I believe there is beauty in hearing the voices of people who haven't been heard.
소외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고 믿습니다.
["Drawing the Blinds," 2014]
["블라인드 내리기," 2014]
["The Jerome Project (Asphalt and Chalk) III," 2014]
["제롬 프로젝트 (아스팔트와 분필) III," 2014]
[Beneath an Unforgiving Sun (From A Tropical Space)," 2020]
["지독한 태양 아래 (열대 지방에서)," 2020]
That's a complex idea, because the things that must be said are not always lovely. But somehow, if they're reflective of truth, I think, fundamentally, that makes them beautiful.
사실 꽤 복잡한 일입니다.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들은 항상 듣기 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진실을 반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Music)
(음악)
There's the aesthetic beauty of the work that in some cases functions as more of a Trojan horse. It allows one to open their hearts to difficult conversations. Maybe you feel attracted to the beauty, and while compelled by the technique, the color, the form or composition, maybe the difficult conversation sneaks up.
제 작업에는 때론 트로이 목마처럼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보다 어려운 대화로 이끄는 거죠. 당신이 아름다움에 이끌리고, 테크닉이나 색감, 형식 혹은 구도에 눈길을 뺏긴 와중에 골치 아픈 논의로 슬며시 빠져드는 거죠.
["Billy Lee and Ona Judge Portraits in Tar," 2016]
["타르에 덮인 빌리 리와 오나 저지의 초상화," 2016]
I really taught myself how to paint by spending time at museums and looking at the people that -- the artists, rather -- that I was told were the masters.
사실 제가 그리는 법을 익힐 수 있었던 건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관찰했던 덕이었습니다.
Looking at the Rembrandts ["The Night Watch"],
렘브란트 ["야경"],
Renoir ["Luncheon of the Boating Party"],
르누아르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Manet ["Luncheon on the Grass"],
마네의 작품을 보면서 ["풀밭 위의 점심 식사"],
it becomes quite obvious that if I'm going to learn how to paint a self-portrait by studying those people, I'm going to be challenged when it comes to mixing my skin or mixing the skin of those people in my family. There's literally formulas written down historically to tell me how to paint white skin -- what colors I should use for the underpainting, what colors I should use for the impasto highlights -- that doesn't really exist for dark skin. It's not a thing.
깨달은 게 있다면 만약 제가 이 작가들을 연구해서 자화상 그리는 법을 배울 때 제가 막히게 될 부분은 저나 제 가족의 피부색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백인의 피부를 표현하려면 그야말로 역사적으로 기록된 공식을 따르면 됩니다. 밑칠을 할 때 어떤 색을 써야 하고 밝은 부분에 어떤 색을 올려야 하는지 공식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어두운 피부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 건 없어요.
It's not a thing because the reality is, our skin wasn't considered beautiful. The picture, the world that is represented in the history of paintings doesn't reflect me. It doesn't reflect the things that I value in that way, and that's the conflict that I struggle with so frequently, is, I love the technique of these paintings, I have learned from the technique of these paintings, and yet I know that they have no concern for me.
왜냐하면 우리 피부색이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현실 때문이죠. 회화의 역사가 재현해온 세계상에 저는 없습니다.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반영되지 않은 세계예요. 그리고 이 모순 때문에 저는 항상 고민합니다. 저는 그런 회화 작품들의 테크닉을 동경하고 익혀왔지만 정작 이 작품들에게 저는 안중에도 없다는 걸 압니다.
And so there are so many of us who are amending this history in order to simply say we were there. Because you couldn't see doesn't mean we weren't there. We have been there. We have been here. We've continued to be seen as not beautiful, but we are, and we are here. So many of the things that I make end up as maybe futile attempts to reinforce that idea.
그래서 이런 역사를 바꾸려는 저와 같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그저 우리도 이곳에 있었다고 말하기 위해서죠. 우리를 볼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있었습니다. 역사는 우리 인종이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치부해 왔죠. 하지만 우리는 아름답고 바로 여기 존재합니다. 제 작품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에 힘을 싣고자 하는 어쩌면 헛된 시도라고 볼 수 있죠.
["Drawing the Blinds," 2014]
["블라인드 내리기," 2014]
["Seeing Through Time," 2018]
["시간을 꿰뚫어 바라보기," 2018]
Even though I've had the Western training, my eye is still drawn to the folks who look like me. And so sometimes in my work, I have used strategies like whiting out the rest of the composition in order to focus on the character who may go unseen otherwise. I have cut out other figures from the painting, one, to either emphasize their absence, or two, to get you to focus on the other folks in the composition.
비록 서구식 회화 기법을 배워왔지만 제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여전히 저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론 제 작품의 나머지 구성 요소들을 흰 물감으로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회화 작품에서 다른 인물들을 오려내기도 하는데요. 첫째로 그들의 부재를 부각해 드러내기 위함이고, 둘째로 화면에 남겨진 인물들을 눈여겨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Intravenous (From a Tropical Space)," 2020]
["링거 (열대 지방에서)," 2020]
So "The Jerome Project," aesthetically, draws on hundreds of years of religious icon painting,
"제롬 프로젝트"는 수백 년에 걸친 종교 성화의 형식을 빌린 작품입니다.
["The Jerome Project (My Loss)," 2014]
["제롬 프로젝트 (나의 상실)," 2014]
a kind of aesthetic structure that was reserved for the church, reserved for saints.
교회와 성자들을 기리기 위해 쓰였던 형식을 저도 사용한 셈이죠.
["Madonna and Child"]
["성모자상"]
["Leaf from a Greek Psalter and New Testament"]
["그리스 시편과 신약성서에서 발췌된 낱장"]
["Christ Pantocrator"]
["전능자 예수"]
It's a project that is an exploration of the criminal justice system, not asking the question "Are these people innocent or guilty?", but more, "Is this the way that we should deal with our citizens?" I started a body of work, because after being separated from my father for almost 15 years, I reconnected with my father, and ... I really didn't know how to make a place for him in my life. As with most things I don't understand, I work them out in the studio. And so I just started making these portraits of mug shots, starting because I did a Google search for my father, just wondering what had happened over this 15-year period. Where had he gone? And I found his mug shot, which of course was of no surprise. But I found in that first search 97 other Black men with exactly the same first and last name, and I found their mug shots, and that -- that was a surprise. And not knowing what to do, I just started painting them.
이 프로젝트는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탐구라 볼 수 있는데, 이 사람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묻는 게 아니라 이게 과연 시민을 다루는 적합한 방법인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했던 계기는 제가 아버지와 거의 15년간 떨어져 지내다가 재회했던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예술로 풀어내는 제 습관처럼 작업실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용의자 사진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던 게 시작이었어요. 도대체 15년간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디에 있었던 걸까? 아버지의 용의자 사진을 찾을 수 있었고 그건 그리 놀랍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 번의 검색에서 아버지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흑인 97명의 용의자 사진을 함께 찾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그저 그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Initially, the tar was a formula that allowed me to figure out how much of these men's life had been lost to incarceration. But I gave up that, and the tar became far more symbolic as I continued, because what I realized is the amount of time that you spend incarcerated is just the beginning of how long it's going to impact the rest of your life.
처음에 타르를 사용했던 건 이들이 감금되어 허비했던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나니, 타르를 계속 작업에 사용할수록 보다 상징적인 재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 영향을 받을 여생과 비교했을 때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So in terms of beauty within that context, I know from my friend's family who have been incarcerated, who are currently incarcerated, folks want to be remembered. Folks want to be seen. We put people away for a long time, in some cases, for that one worst thing that they've done. So to a degree, it's a way of just saying, "I see you. We see you." And I think that, as a gesture, is beautiful.
이런 맥락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자면, 제 친구의 가족 중 감옥에 투옥되었거나 여전히 투옥되어있는 사람들을 아는데요. 그들은 기억되고 싶어합니다. 지켜봐 주길 원해요. 우리가 사람을 구금할 때 어떤 경우엔 그들이 저지른 최악의 악행 하나만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제가 말을 건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 널 기억해. 우리가 널 기억해." 그리고 이런 감정의 표시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In the painting "Behind the Myth of Benevolence," there's almost this curtain of Thomas Jefferson painted and pulled back to reveal a Black woman who's hidden. This Black woman is at once Sally Hemings, but she's also every other Black woman who was on that plantation Monticello and all the rest of them. The one thing we do know about Thomas Jefferson is that he believed in liberty, maybe more strongly than anyone who's ever written about it. And if we know that to be true, if we believe that to be true, then the only benevolent thing to do in that context would be to extend that liberty. And so in this body of work, I use two separate paintings that are forced together on top of one another to emphasize this tumultuous relationship between Black and white in these compositions. And so, that -- that contradiction, that devastating reality that's always behind the curtain, what is happening in race relations in this country -- that's what this painting is about.
"선의라는 전설 뒤에 감춰진 것" 이란 작품에서는 토머스 제퍼슨이 그려진 일종의 커튼이 걷히면서 가려졌던 흑인 여성이 드러나는데요. 이 인물은 샐리 헤밍스이기도 하지만 몬티첼로 농장에서 노예로 일했던 이들, 그리고 모든 흑인 여성들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토머스 제퍼슨에 대해서 잘 아는게 있다면 그건 바로 그가 자유를 신봉했다는 겁니다. 아마 자유에 대한 글을 써본 그 누구보다도요. 우리가 그게 맞는 걸 알고,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이런 맥락에서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미덕은 이 자유를 확장하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별개의 두 그림이 인위적으로 겹쳐진 걸 볼 수 있는데, 이 구도를 통해 흑인과 백인 사이 격동적인 관계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대비를, 항상 커튼 뒤에 가려졌던 이 지독한 현실을, 이 나라에서 인종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작품에서 다루고자 했습니다.
The painting is called "Another Fight for Remembrance." The title speaks to repetition. The title speaks to the kind of violence against Black people by the police that has happened and continues to happen, and we are now seeing it happen again. The painting is sort of editorialized as a painting about Ferguson. It's not not about Ferguson, but it's also not not about Detroit, it's also not not about Minneapolis.
이 작품의 제목은 "기억되기 위한 또 다른 싸움"입니다. 제목을 통해 거듭 되풀이되는 사안, 즉 흑인을 대상으로 자행되어온 경찰의 폭력을 이야기합니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현재도 우린 비슷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죠. 이 작품은 퍼거슨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회화적 논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퍼거슨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지 않고, 디트로이트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미니애폴리스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다.
The painting was started because on a trip to New York to see some of my own art with my brother, as we spent hours walking in and out of galleries, we ended the day by being stopped by an undercover police car in the middle of the street. These two police officers with their hands on their gun told us to stop. They put us up against the wall. They accused me of stealing art out of a gallery space where I was actually exhibiting art. And as they stood there with their hands on their weapons, I asked the police officer what was different about my citizenship than that of all of the other people who were not being disturbed in that moment. He informed me that they had been following us for two hours and that they had been getting complaints about Black men, two Black men walking in and out of galleries. That painting is about the reality, that it's not a question of if this is going to happen again, it's a question of when.
제가 이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뉴욕에 갔을 때의 일 때문입니다. 남동생과 함께 제 작품을 보러 갔었습니다. 갤러리 안팎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입 수사하던 경찰차의 제지를 받으며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길 한 가운데서 경찰 두 명이 손에 총을 들고 멈추라고 명령한 뒤 저희를 벽으로 밀쳤습니다. 제가 미술 작품을 훔치려 한다는 이유로요. 제가 전시를 열고 있던 바로 그 갤러리에서 말이죠. 그들은 총에 손을 떼지 않은 채 서 있었고, 저는 제가 가진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그 순간 경찰에게 제지를 당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시민권과 어떻게 다른지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두 시간 동안 따라다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흑인 남자들에 대한 민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갤러리를 드나드는 두 흑인 남자요. 이 작품은 이런 현실에 대한 것입니다. 이건 이런 일이 또 일어날지의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닌, 언제 다시 일어날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This most recent body of work is called "From a Tropical Space." This series of paintings is about Black mothers. The series of paintings takes place in a supersaturated, maybe surrealist world, not that far from the one we live in. But in this world, the children of these Black women are disappearing. What this work is really about is the trauma, the things that Black women and women of color in particular in our community have to struggle through in order to set their kids out on the path of life.
가장 최근 작품은 "열대 지방에서" 라는 제목의 시리즈입니다. 이 연작은 흑인 어머니들에 대한 것으로, 강렬한 색채에, 조금은 초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과 그리 다르지 않죠. 하지만 그림 속 세계에서 흑인 어머니들의 자녀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작품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건 트라우마입니다. 특히 흑인 여성이나 유색인종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자녀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겪는 고난 말이죠.
What's encouraging for me is that this practice of mine has given me the opportunity to work with young people in my community. I'm quite certain the answers are not in me, but if I'm hopeful at all, it's that they may be in them.
저를 기쁘게 했던 것은 제가 작업을 하면서 우리 공동체에 있는 청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겁니다. 저는 답이 제 안에 없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러나 희망을 품자면, 그 어린 친구들은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NXTHVN" is a project that started about five years ago. NXTHVN is a 40,000-square-foot arts incubator in the heart of the Dixwell neighborhood in New Haven, Connecticut. This is a predominantly Black and Brown neighborhood. It is a neighborhood that has the history of jazz at every corner. Our neighborhood, in many ways, has been disinvested in. Schools are struggling to really prepare our population for the futures ahead of them. I know that creativity is an essential asset. It takes creativity to be able to imagine a future that is so different than the one that is before you. And so every artist in our program has a high school studio assistant: there's a high school student that comes from the city of New Haven who works with them and learns their craft, learns their practice. And so we've seen the ways in which pointing folks at the power of creativity can change them.
"넥스트헤이븐"은 제가 5년 전에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시의 딕웰 지역 중심가에 있는 1,125평에 달하는 공간에서 차기 작가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프로젝트입니다. 그곳은 유색인종이 주로 사는 지역으로, 구석구석 재즈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수년간 우리 지역은 투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들이 미래 세대들을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의력은 중요한 자산입니다.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과는 다른 미래를 그리는 데에도 창의력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희 프로그램에 소속된 작가들은 모두 고등학생 조수를 둡니다. 뉴헤이븐 시에서 온 학생이 작가와 일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작업하는 방식을 배우죠. 저희는 보았습니다. 창의력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는 걸요.
Beauty is complicated, because of how we define it. I think that beauty and truth are intertwined somehow. There is something beautiful in truth-telling. That is: that as an act, truth-telling and the myriad ways it manifests -- there's beauty in that.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정의하는 방식 때문에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름다움과 진실은 어쩐지 긴밀히 얽혀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데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건 바로 진실을 말하는 행위와 진실을 드러내는 무수히 많은 방식에 아름다움이 녹아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