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1881, doctor William Halsted rushed to help his sister Minnie, who was hemorrhaging after childbirth. He quickly inserted a needle into his arm, withdrew his own blood, and transferred it to her. After a few uncertain minutes, she began to recover.
1881년, 의사인 윌리엄 홀스테드는 동생인 미니를 돕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미니는 출산 후 출혈을 겪고 있었죠. 그는 재빨리 주사바늘을 자신의 팔에 꽃았습니다. 자신의 피를 뽑아 미니에게 수혈했습니다. 불안한 채로 몇 분이 흐르고 미니가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Halsted didn’t know how lucky they’d gotten. His transfusion only worked because he and his sister happened to have the same blood type— something that isn’t guaranteed, even among close relatives.
홀스테드는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몰랐습니다. 미니와 그가 같은 혈액형이었기 때문에 수혈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었으니까요. 가까운 친척 간에도 혈액형이 같다고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홀스테드가 살던 시대에는 혈액형이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Blood types hadn’t been discovered by Halsted’s time, though people had been experimenting with transfusions for centuries— mostly unsuccessfully. In 1667, a French physician named Jean-Baptiste Denis became the first to try the technique on a human. Denis transfused sheep’s blood into Antoine Mauroy, a man likely suffering from psychosis, in the hopes that it would reduce his symptoms. Afterward, Mauroy was in good spirits. But after a second transfusion, he developed a fever, severe pain in his lower back, intense burning in his arm, and he urinated a thick, black liquid.
수 세기 동안 수혈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667년, 프랑스 내과의사인 장 바티스트 드니가 처음으로 인간에게 수혈을 시도했습니다. 드니는 양의 피를 앙투안느 모루아에게 수혈했습니다. 정신병으로 짐작되는 병을 앓고 있던 모루아의 증세를 완화시키려는 희망에서였죠. 이후 모루아는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수혈 이후 모루아는 열이 났고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팔이 심하게 화끈거렸습니다. 그러다 끈적한 검은 액체를 소변으로 쏟아냈습니다. 그때는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Though nobody knew it at the time, these were the signs of a dangerous immune response unfolding inside his body. This immune response starts with the production of proteins called antibodies, which distinguish the body’s own cells from intruders. They do so by recognizing the foreign proteins, or antigens, embedded in an intruder’s cell membrane. Antibodies latch onto the antigens, signaling other immune cells to attack and destroy the foreign cells.
이 증상들은 그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면역반응의 신호였습니다. 이 면역반응은 항체라 부르는 단백질 생산으로 시작됩니다. 항체는 자신과 외부 침입 세포를 구별합니다. 침입자의 세포막에 있는 이질 단백질, 즉 항원을 알아봄으로써 구별합니다. 항체는 항원에 붙어서 다른 면역세포에게 신호를 보내 이질 세포를 공격하고 파괴하게 합니다. 파괴된 세포는 소변을 통해 몸밖으로 배출됩니다.
The destroyed cells are flushed from the body in urine. In extreme cases, the massive break down of cells causes clots in the bloodstream that disrupt the flow of blood to vital organs, overload the kidneys, and cause organ failure. Fortunately, Denis’s patient survived the transfusion. But, after other cross-species transfusions proved fatal, the procedure was outlawed across Europe, falling out of favor for several centuries.
극단적인 경우에, 세포의 대량 파괴는 혈액응고를 일으켜 필수 장기로 혈액이 흐르는 것을 막고, 신장에 과부하를 주어 장기부전을 초래합니다. 다행히도 드니의 환자는 그 수혈을 버텨냈습니다. 그러나 이종 간 수혈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방법은 유럽 전역에서 법으로 금지되었고, 몇백 년 동안 쓰이지 않았습니다.
It wasn’t until 1901 that Austrian physician Karl Landsteiner discovered blood types, the crucial step in the success of human to human blood transfusions. He noticed that when different types were mixed together, they formed clots. This happens when antibodies latch on to cells with foreign antigens, causing blood cells to clump together. But if the donor cells are the same blood type as the recipient’s cells, the donor cells won’t be flagged for destruction, and won’t form clumps.
1901년이 되어서야 호주의 의사 칼 란드스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했습니다. 혈액형 발견은 인간 간 수혈의 성공에 중요한 단계였죠. 그는 다른 혈액형이 섞이면 혈액이 응고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 현상은 이질 항원을 가진 세포에 항체가 붙을 때 일어나며 혈구를 뭉치게 합니다. 그러나 헌혈자의 세포가 환자의 세포와 같은 혈액형이면 헌혈자 세포는 파괴신호를 받지 않고, 혈액응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By 1907, doctors were mixing together small amounts of blood before transfusing it. If there were no clumps, the types were a match. This enabled them to save thousands of lives, laying the foundation for modern transfusions.
1907년 경에는 의사들이 수혈 전에 피를 조금 섞어 보았습니다. 응집이 안 생기면 맞는 혈액형이었죠. 덕분에 의사들은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고, 현대적 수혈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전까지는 모든 수혈이 두 사람 간에 직접,
Up to this point, all transfusions had occurred in real time, directly between two individuals. That’s because blood begins to clot almost immediately after coming into contact with air— a defense mechanism to prevent excessive blood loss after injury.
실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혈액이 공기에 노출되자마자 응고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부상 후 과다 출혈로 인한 손실을 방지하는 몸의 방어기제입니다. 1914년, 연구자들은 구연산나트륨이 혈액응고를 멈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In 1914, researchers discovered that the chemical sodium citrate stopped blood coagulating by removing the calcium necessary for clot formation. Citrated blood could be stored for later use— the first step in making large scale blood transfusions possible. In 1916, a pair of American scientists found an even more effective anticoagulant called heparin, which works by deactivating enzymes that enable clotting. We still use heparin today.
구연산나트륨이 혈액응고에 작용하는 칼슘을 제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차후 사용을 위해 구연산나트륨이 첨가된 혈액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량 수혈을 가능하게 한 첫 단계였죠. 1916년에 과학자 두 명이 항응고제로 더 큰 효과가 있는 헤파린을 찾습니다. 헤파린은 혈액 응고 효소를 비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헤파린을 사용합니다.
At the same time, American and British researchers developed portable machines that could transport donor blood onto the battlefields of World War I. Combined with the newly-discovered heparin, medics safely stored and preserved liters of blood, wheeling it directly onto the battlefield to transfuse wounded soldiers.
동시에 미국과 영국 과학자들이 혈액 이송 장치를 개발해서 혈액을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장으로 이송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의료진은 새로 발견된 헤파린을 넣어 안전하게 많은 양의 혈액을 저장해서 전장에 있는 부상병들에게 수혈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 조잡한 휴대용 상자는 현대의 혈액은행으로 발전해
After the war, this crude portable box would become the inspiration for the modern-day blood bank, a fixture of hospitals around the world.
오늘날 전세계 병원에 필수적인 장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