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today I'm going to talk about the word goodwill. Goodwill, did you know, is a technical accounting term. It's an asset that's literally only created when a buyer shows up and pays a purchase price for a company that's more than the fair value of that company's net assets. So this unexplained differential is named goodwill. And with it, accountants actually can make balance sheets balance.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호의’입니다. 호의, 즉, 영업권은 전문 회계 용어입니다. 일종의 자산으로서, 오직 어떤 구매자가 나타나서 회사를 매수할 때 회사 순자산의 공정 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때만 발생하죠. 설명되지 않은 이 차이를 영업권이라고 합니다. 회계사들은 그걸로 대차대조표의 균형을 맞출 수 있죠.
Now, of course, this isn't how most of us think of goodwill. We experience the more human definition of goodwill. And I remember very clearly when that definition first entered my life.
물론 이는 일반적으로 아는 호의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그 의미를 좀 더 인간적으로 받아들이죠. 그 의미가 제 삶에 처음 들어온 때를 정말 명확하게 기억합니다.
It was 1976, and I was five years old. And I was sitting there one morning in kindergarten class when in walked the father and older siblings of one of my friends. And they handed me a present. They gave me a little toy red helicopter, that sort of looked like this. And in the moment, I didn't really understand why they were giving it to me. I just remember sensing that they were happy and sad at the same time. And it wasn't only until much later that I had my aha moment. That my friend had lost his mom recently, and that this gift, it was a thank you, because I would often share my lunch with my friend on the many days that he would come to school without any lunch of his own.
때는 1976년, 제가 5살 때였죠. 어느 날 아침, 유치원에 있는데 친구의 아빠와 형이 찾아왔습니다. 저한테 선물을 건네더군요. 빨간 장난감 헬리콥터였어요. 이와 비슷하게 생긴 거였죠. 그때는 저한테 이걸 왜 주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알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행복했고 동시에 슬펐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 친구가 최근에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과 이 선물이 고맙다는 뜻이라는 것을요. 왜냐하면 제가 친구하고 제 점심을 자주 나눠 먹었거든요. 그 친구는 점심 도시락 없이 유치원에 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And over time, as things happen, I lost the toy, but I never forgot the lesson and especially how it made me feel. My friend's father had rewarded kindness without cheapening it, and he made it tangible with an object, and he made it human in that exchange, and he made it shareable with this story. And in doing all of this, he created real value out of thin air by turning kindness into a scalable, collectively-owned asset called goodwill.
시간이 지나고 으레 그러듯이 그 장난감은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그 일이 저에게 준 교훈과 그때의 감정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분은 저에 대한 고마움을 온전히 갚아주셨습니다. 그 마음을 만질 수 있는 사물에 담아서 인간적 교감을 나누고 이야기로 전할 수 있게 해주신 거예요. 그분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 내고 친절함을 측정할 수 있는 공동의 자산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호의입니다.
You know, and then for us, for many of us, my life, the years just pass at a dizzying pace and I collected a couple of fancy degrees, I became a dad myself three times over. And I found myself wheeling and dealing as an investment banker and a private equity investor for many years. And the lessons from that red helicopter, they seemed incredibly childish and weirdly misguided in the world of business and finance. Because let’s face it: non-revenue-generating investments in people, they're generally not measured, let alone rewarded.
그 후로, 다들 그렇듯이 제 삶도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그 와중에 그럴듯한 학위도 몇 개 받았고요. 아이들도 셋이나 태어났죠. 투자 은행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활동도 했고요. 펀드 투자자로 수년간 일했습니다. 빨간 헬리콥터의 교훈을 생각해 보면 투자업계 종사자로선 정말 유치하고 엉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솔직히 말해서 사람에 대한 투자는 수익이 나지 않고 그에 따른 보상은커녕 평가도 어렵기 때문이죠.
But something happened in the summer of 2013 that would forever change the way I thought about kindness, goodwill and their roles in reshaping business. I was on a series of just deflating board calls involving a failed investment in a company called Ashley Stewart. Ashley Stewart as a clothing retail that has served and employed primarily plus-sized, moderate-income Black women in neighborhoods across America since 1991. And I felt accountable to my former employer, to my former investors, to the 1,000 plus employees at Ashley Stewart, and frankly, to myself because I had saved this company from a near-death bankruptcy filing just three years prior. So this time I did something, I took an action, I made a choice, I resigned as chairman of the board and I agreed to serve as a first-time CEO of this broken company. But I agreed to do it just for six months. I just wanted to avert a nasty liquidation. And then I wanted to come home and get on with my life.
하지만 2013년 여름에 있었던 어느 사건으로 인해 친절함과 호의에 대한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도요. 당시 저의 투자 사업들이 연이어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에 실패한 회사 중에 애슐리 스튜어트라는 곳도 있었죠. 애술리 스튜어트는 의류 회사인데 주요 고객층과 회사 직원 대부분이 몸집이 있는 중산층 흑인 여성이었고 1991년 설립 때부터 전국에서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했죠. 저는 이전 고용주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전 투자자들과 1,000 명이 넘는 애슐리 스튜어트 직원들과 그리고 솔직히 저 자신에게도요. 3년 전에 문 닫기 직전의 이 회사를 제가 살렸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행동을 취했습니다. 결단을 내려서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망해가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CEO 직책을 맡기로 한 것입니다. 대신 여섯 달 동안만 맡기로 했죠. 단지 파산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제 인생을 살 생각이었습니다.
I had immediate pangs of regret during those first few weeks at Ashley Stewart. The corporate headquarters was a converted warehouse. I just remember there being a lot of bugs. There was no Wi-Fi at the headquarters, and the stores didn't have computers. And because there was a lack of trust, there were vendors in the lobby demanding to be paid in cash upfront. And because of them, a lot of my employees were scared. And so I ended up having to hire an armed security guard to protect them. And I felt alone, like, on every dimension you can think of -- geography, industry, gender and, yeah, race. My first town hall, it went something along these lines. "Hi, I'm James. I've never done this before. You know, I may be the least qualified person to run this company. But I'm here and I'm willing to learn. Oh, and by the way, after this speech, I’ve got to head out to the DC,” -- that’s a distribution center, right -- "I've got to head out to the DC, I've got to find stuff to sell to fund payroll. But don't panic. Because I think that if we can center kindness and math together, then maybe we can get out of this together." And I don't know why I said some of these things with my outside voice.
그런데 업무 시작 단 몇 주 만에 뼈저린 후회가 곧 밀려왔습니다. 물류 창고를 개조해서 기업 본사로 쓰고 있었는데 벌레가 정말 많았습니다. 본사 사무실에 무선 인터넷도 없었고, 매장에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회사에 대한 신뢰도 바닥인 상태여서 로비에는 현금 선지불을 요구하는 거래처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 때문에 직원들이 겁을 먹을 정도였죠. 나중엔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 경비원까지 고용해야 했습니다. 저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출신 지역, 일했던 업계, 성별, 그리고 인종 측면에서도요. 직원들과 첫 만남에서 대충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요. “안녕하세요, 전 제임스입니다. 이런 일은 사실 처음이에요. 어쩌면 이 회사를 운영하기에 모자란 사람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 섰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요. 아, 참, 이 취임사를 마치면 DC로 향할 생각입니다.” 아, DC는 물류 센터를 의미합니다. “마치고 바로 DC로 가서 급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분할 것을 찾아 보려고 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친절함과 계산을 둘 다 핵심 가치로 두면 이 난관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말을 왜 그리도 자신 있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Laughter)
(웃음)
I may have panicked just a little bit, but the words were true and they did come from my heart. And you know, what happened was that the people who really wanted to solve these problems once and for all, they stepped up. And it was the women. It was the employees and customers alike at those stores, in those neighborhoods across America who came forth. And they offered me insight after insight as we work side by side together. And some of the customers, sensing that we were in a lot of trouble, they even offered to bring back their clothes hangers so that we could save money.
약간 긴장했던 거 같기도 하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은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회사를 살리기를 원했고 모두가 발 벗고 나섰죠. 많은 여성들이 함께했습니다. 회사 직원들과 고객들, 전국 매장에서 이웃처럼 지내오던 그 여성들이 함께 나섰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저는 끝없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회사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된 일부 고객들은 비용을 줄이라고 옷걸이를 돌려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You know, I know what you may be thinking, you might think, geez, there were a lot of reasons why the ladies of Ashley Stewart might have rejected me. But they didn't. They did the exact opposite. And store after store sort of worked this way: They would say, “You’re James? You’re the new CEO of Ashley Stewart? Well, OK, let’s go.” And this played out in town after town, city after city. And their generosity toward one another and their kindness to me, it just rekindled memories of the red helicopter. And I remembered the lesson that goodwill, like, real goodwill, it is a real asset that can compound and be amplified independent of financial capital.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거예요. ’세상에, 애슐리 스튜어트의 여성들이 저 사람을 거부할 게 뻔하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정반대였어요. 여러 매장을 돌아볼 때 반응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당신이 제임스예요? 애슐리 스튜어트의 신임 사장이 당신이에요? 음, 좋아요, 함께해 봅시다.” 이런 분위기는 마을에서 마을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너그러움과 저에 대한 친절함은 빨간 헬리콥터를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죠. 저는 그 교훈을 떠올렸습니다. 호의, 진정한 호의야말로 진정한 자산이고 그걸 키워나가면 회사의 재정 자립을 확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늦은 밤마다,
So late, late nights -- And I'm going to use these words very deliberately -- It inspired me to compose, draw, design, create a new business plan with new mathematical formulas, operational protocols that were woven together with multi-sensory storytelling, whose singular purpose was to create real value, driving real goodwill. The business plan fundamentally had three concentric spirals underpinning it. So picture this.
저는 이 단어들을 아주 신중하게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그 교훈에서 영감을 받아서 구상하고, 그림도 그리고, 설계도 하면서 새로운 사업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로운 계산 방식과 회사 운영 방식을 적용했고 또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목표는 진정한 호의를 이끌어내는 진짜 가치를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사업 계획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나선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걸 그려 보세요.
So first, we had the courage to establish a culture of kindness in the workplace. Period, end of story. It was a strategic priority day in, day out. And yeah, there were moments as individuals we failed. But as a collective, we were very successful in changing attitudes about the transformative power of kindness at work. Because you see, what kindness does, it distributes the joy, actually, of problem-solving to everyone. It creates a safe environment that unleashes innovation, especially the unselfish kind. And it turns perceived liabilities into assets, which, as any financial accountant will tell you, mathematically has to result in the creation of real equity value in every meaning of the word.
첫 번째로, 우리는 친절을 직장 문화로 정착시킬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상, 이것으로 얘기는 끝입니다. 그것이 늘 최우선이었죠. 물론 개인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실패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전체로서는 성공적으로 태도를 바꿀 수 있었고 친절이 발휘하는 힘을 업무에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친절함 덕분에 모든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쁨을 다 같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친절함은 혁신을 가져올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특히 사심 없는 친절함 말이죠. 그리고 인지되는 부채를 자산으로 바꾸어 줍니다. 모든 회계사가 알려주는 것처럼, 그 자산은 회계상으로 그 단어의 모든 면에서 진짜 자산 가치를 만듭니다.
Second, once we felt sure about the authenticity of the internal goodwill that we had co-created, we just wanted to show the whole world and make it tangible to everybody. So by trusting our employees and our customers and by leveraging their smartphones and their social media platforms, we were able to scale our marketing creative efforts very fast in a very low-cost and organic way. We invited everyone in, and we were able to merge ecosystems and blurring the lines between outsider and insider, and them and us. And we were able to create a seat at the table for everyone, which, by the way, enabled us to leverage the assets and the balance sheets of everyone.
두 번째로, 함께 만든 직장 내 호의 문화의 영향력을 깨닫고 나서는 바깥 세상에도 알리고 모두가 경험하길 바랐습니다. 회사 직원들과 고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SNS을 통해 우리 판매 시장을 아주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적은 비용에 유기적인 방식으로 말이죠. 모든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생태계를 통합할 수 있었고 내부와 외부, 고객과 우리 사이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는데 그럼으로써 모든 이들의 자산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And third, once we centered goodwill, we had to center people. And it wasn't long before we realized we had to redo our financial formulas and our financial reporting. So payroll, instead of being an expense, became an investment. And internal communications, well, that was just a great way to train and to teach. And the materials that we created became critical first stanzas of the overall narrative that was our brand song. And working capital? Well, our vendors became effectively co-investors, and we would measure working capital as a unit of trust that we were rebuilding together step by step. And finally, human resources. Well, how could that possibly be a cost center?
세 번째로, 호의를 중심 가치로 두자 사람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회계 방식을 바꾸어야 함을 알았죠. 회계 보고서도 바꾸고요. 인건비를 경비가 아니라 투자로 보게 되었죠. 그리고 내부의 소통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육 훈련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룬 성과는 우리 브랜드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중요한 첫 장이 되었습니다. 운영 자금은 어땠을까요? 우리 제품의 거래처들이 실질적인 공동 투자자로 바뀌었고, 운영 자금을 신뢰의 척도로 삼아 함께 차곡차곡 다시 키워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적 자원은 어떨까요? 거기에 비용을 생각해서는 안 될 겁니다.
See, when you center on maximizing goodwill, it forces you to actually measure it. And you realize that despite what the rules of accounting might say, that it's operations and leadership and culture that actually create goodwill. Not some outside source of financial capital. And it makes accounting actually accountable. And it isn't long also before you realize that the entire flow of your operations has to naturally follow suit.
호의를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하면 그 가치를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계 원칙이 어떻든 상관 없이 사실 기업 운영, 리더십, 조직 문화에 따라 호의가 생겨납니다. 외부 자본의 투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요. 그러면 회계에 진정한 신뢰가 생기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체 기업 운영도 자연스럽게 그 문화를 따라가게 됩니다.
So to illustrate all of this, I'm going to take you back to the holiday season of 2013, which was only four months removed from my sort of "meh" town hall. We were out of money at this point, and I was terrified. But we made a couple of decisions that seemed to have long-term importance for our efforts. We hosted a really modest holiday party at a homeless shelter for women in Brooklyn, New York. And at this point, we didn't have anything to give, so we gave our time. We gave our hearts, and we found a few boxes of merchandise samples that we donated. And around that time as well, we organized a chain-wide sales competition. The top 40 stores earned the right to donate 250 dollars to a local charity of their own choosing.
이 모든 것을 설명드리기 위해 2013년 연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 별로였던 취임사를 하고 단 4개월이 지났을 때입니다. 이때는 회사에 돈이 바닥났고 저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할 것 같은 몇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매우 조촐하게나마 연말 파티를 열었습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여성 노숙자 쉼터에서 말이죠. 그런데 그때는 선물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간을 나누고 우리 마음을 선사했죠. 견본이긴 하지만 제품을 몇 상자 기증도 했습니다. 또한 그 시기 즈음에 전 매장에서 판매 경쟁 대회도 했습니다. 상위 40개 매장은 250달러 기부권을 얻어서 직접 선정한 지역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 있었죠.
Together, these two things, right, the event -- the party, the competition, they were just a way for us to say "thank you" and "goodbye" to the local neighborhoods and communities that had supported this company for 20 years. And the outpouring was just amazing. We saw real friendships that have been developed over those 20 years play out right in front of us. And our newly installed e-com platform? We operated it in a way that accentuated that and connected people, rather than diminishing humanity. And sales just exploded. And just like that, we had found a way to operationalize goodwill. In our internal culture, in our outbound sales and marketing, but also, perhaps most significantly, in our sense of compensation system. There were all three spirals just sort of doing this, mutually reinforcing each other. We measured everything.
이 두 가지 행사, 연말 파티와 판매 대회는 사실 감사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0년 간 우리 회사와 함께한 지역 주민과 이웃들에게 말이죠. 그런데 그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진정한 우정을 볼 수 있었죠. 지난 20년간 쌓아왔던 우정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새로 시작한 전자상거래 서비스도 우리는 바로 그 부분을 강조하고 상호 연결성을 중요시했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을 버리지 않았죠. 그러자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호의를 활용할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안으로는 우리 기업 문화와 밖으로는 판매와 홍보에도 활용할 수 있었죠.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보상 시스템에 활용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나선이 모여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게 되죠. 우리는 그 모든 걸 측정했습니다.
You know, down the road, as the strategy really took hold, and I was finally able to secure some financial capital and make some necessary technological investments, we just did the same thing, just over and over again at scale. So we rolled out something called a CEO Citizenship Award. That was the most prestigious, highest-compensated bonus system in the company. It went to those employees who lived out the following credo. You act like an owner. Be a good friend. Be a good mentor. We never factored in sales or revenues into these determinations. Second, you know, our marketing team, our outbound-facing consumer team continued to do most of the most important internal communications. And I, as a former high school teacher, I relished the fact that I could teach the principles of money, life and joy to my colleagues at scale. And that really kind of sad holiday party? Well that evolved into something big. We called it Finding Ashley Stewart, which was an annual, nationwide, year-long search for unsung women leaders in our communities. It would culminate in front of 3,000 screaming fans at the Brooklyn Kings Theater and a star-studded concert. And the best part of all of it was that the vendors, which by now included some of the world's leading tech and financial companies, they're the ones who funded all of this.
그 과정에서 운영 전략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결국 저도 기업 운영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한 기술 투자도 할 수 있었죠. 저희는 그 문화를 계속 유지했고 규모를 키워 반복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CEO 시민상도 만들었죠. 사내에서 가장 권위 있고 가장 큰 상금이 지급되는 상으로 우리의 신조를 지키는 직원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회사의 주인처럼 행동하기. 좋은 친구가 되기. 좋은 선배가 되기. 선정 기준에 판매 실적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영업팀과 고객관리팀은 무엇보다 중요한 내부 소통을 계속해서 대부분 수행했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이기도 했던 저로서는 돈과 인생과 즐거움의 원칙을 동료들에게 알려주는 즐거움이 있었죠. 진짜로 뭔가 슬펐던 연말 파티는 어떻게 됐을까요? 더 큰 규모로 발전했습니다. ‘애술리 스튜어트 찾기’라는 전국적인 연례 행사가 되어 그해를 대표하는 숨은 여성 리더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브루클린 킹스 극장을 채운 팬 3,000명의 함성과 함께 유명한 연예인들이 음악회의 막을 내리죠. 더 대단한 건 여러 거래처의 참여입니다. 세계 제일의 기술 기업들과 금융사들이 모든 행사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You know, I ended up spending seven years at Ashley Stewart, leading it. So, far from getting on with my life, it became part of my life, especially the friendships. And we had to make some tough business decisions along the way, and not everyone made it. But our overall strategy and philosophy generated staggering results. And yes, it showed up in our financial statements, too. So within two years, we generated more in annual operating profit than we paid for all of the assets of the company. And our digital strategy, which never forgot to center the real friendships in the stores, it landed us on the stages of the most prestigious business conferences in the world celebrating our growth and our innovation, only a few years removed from not even having Wi-Fi. And it wasn't long before the financial community, well, they changed their minds and they showed up at our headquarters, but this time with their checkbooks, and they stroked us a check that made us convert our real goodwill into accounting goodwill to the tune of well north of 100 million dollars.
결국 전 애슐리 스튜어트를 7년이나 이끌게 되었습니다. 저의 개인적 삶은 멀어졌지만 이 일이 제 삶의 일부가 되었고, 무엇보다 우정을 쌓았습니다. 물론 힘든 결정을 할 때도 있었고, 모두가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략과 철학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죠. 그 결과는 재무 제표에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단 2년 만에 연간 영업 이익이 늘어났고 회사 자산에 대한 부채를 모두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전략 측면에서도 판매에서 진정한 친교를 우선시하는 걸 결코 잊지 않았죠. 그 결과,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기업 행사 무대에 초청 받아 우리가 이룬 성장과 혁신에 대한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선 인터넷도 없던 때로부터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이룬 성과죠. 곧이어 금융계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금융계도 태도를 바꾸고 저희 본사로 찾아오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번엔 수표를 들고 찾아왔어요. 그들은 수표를 발행해 주어 우리가 우리의 호의 문화를 회계상으로도 1억 달러 이상의 가치로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And I know that none of this would have been possible without the lessons that I learned from my friend's father way back in kindergarten. He invested dollars, but also his time and his heart into a little toy red helicopter in 1976. And in the way that he did it, it created a real asset called goodwill. And that goodwill compounded quietly for decades and then ultimately helped save a company, around a thousand jobs, a safe place for a really deserving group of women, and over 1 billion dollars in overall economic productivity. And in doing so, he taught an enduring lesson that helped this grown man regain his balance, a true balance, by remembering to slow down and to see the world through the eyes of a five-year-old child who knows unequivocally that there is one and only one definition of goodwill that creates real value in life and yeah, in business, too.
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유치원 때 제 친구 아버지께서 일깨워주신 교훈 덕분이었습니다. 몇 달러짜리 장난감이었지만 그분의 시간과 마음을 담으신 거였어요. 1976년의 그 작은 장난감 빨간 헬리콥터 안에 말이죠. 그분께서는 그렇게 해서 호의라는 진정한 자산을 만들어내신 겁니다. 그 호의가 수십 년 동안 조용히 커나가서 결국 한 회사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준 것입니다. 일자리 약 천 개와 도움이 절실한 여성들을 위한 안전한 장소, 그리고 10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가치 창출과 함께 말이죠. 그분의 잊지 못할 교훈 덕분에 성인이 된 저의 대차대조표도 균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균형 말이죠. 느긋한 마음을 갖고 다섯 살 어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 아이는 삶에 진정한 가치를 가져다 주는 호의는 단 한 가지뿐임을 확실히 압니다. 네, 물론 사업 측면에서도요.
Thank you very much for listening.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pplause)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