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ssion: what does it look like? Come with me to 915 South Bloodworth Street in Raleigh, North Carolina, where I grew up. If you come in you will see us: evening time, at table -- set for ten but not always all seats filled -- at the point when dinner is ready to be served. Since mom had eight kids, sometimes she said she couldn't tell who was who and where they were. Before we could eat, she would ask, "Are all the children in?" And if someone happened to be missing, we would have to, we say, "Fix a plate" for that person, put it in the oven, then we could say grace, and we could eat.
컴패션 그것은 어떤 것 일까요? 제가 자란 노스 케롤라이나주 랄리의 사우스 블러드워스가 915번지로 같이 가 보시죠. 집에 들어 오시면 저녁 시간에 열 명분의 식사가 차려진 식탁에 앉아 있는 저희 가족들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러나 항상 모두가 그 자리에 있지는 않지요. 식사가 다 준비되어서 먹으려고 할 때 쯤이면 형제가 8명이나 되기 때문에 때로 어머니는 누가 누구고, 또 누가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 어머니께서는 "모두 다 제자리에 있니?' 하고 물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누가 자리에 없으면 그 사람을 위해 먹을 것들을 접시에 담아 오븐에 넣어 두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도를 한 뒤 식사를 했습니다.
Also, while we were at the table, there was a ritual in our family: when something significant had happened for any one of us -- whether mom had just been elected as the president of the PTA, or whether dad had gotten an assignment at the college of our denomination, or whether someone had won the jabberwocky contest for talent -- the ritual at the family was, once the announcement is made, we must take five, ten minutes to do what we call "make over" that person -- that is, to make a fuss over the one who had been honored in some way. For when one is honored, all are honored.
또한 저녁 식사 시간에는 우리 가족간의 일종의 의식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 중 누구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그것이 어머니께서 학부모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신 것이든 아니면 아버지께서 우리 교파의 대학에서 어떤 임명을 받으신 것이든 또는 누군가가 얼토당토한 장기 자랑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탄다든가 일단 그런 발표가 있게 되면, 우리 가족은 의식을 행하게 되는데 5분, 또는 10분동안 소위 그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일이로든 명예로운 일이 있었던 사람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 중 한 명에게 명예가 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명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Also, we had to make a report on our extended "visited" members, that is, extended members of the family, sick and elderly, shut in. My task was, at least once a week, to visit Mother Lassiter who lived on East Street, Mother Williamson who lived on Bledsoe Avenue, and Mother Lathers who lived on Oberlin Road. Why? Because they were old and infirm, and we needed to go by to see if they needed anything. For mom said, "To be family, is to care and share and to look out for one another. They are our family."
또한 우리는 우리가 방문하는 넓은 의미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물어야 했습니다. 넓은 의미의 가족들이란 아프고, 연로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분들입니다. 나의 임무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스트 스트리트에 사시는 라세터 아주머니 브레드소 아베뉴에 사시는 윌리엄슨 아주머니, 오벨린 로드에 사시는 래더 아주머니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구요? 그 분들은 연로하시고 몸이 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이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지 보살펴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 함은 서로 돌보고, 나누고, 지켜주는 것이란다. 그분들은 우리의 가족이야"라고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And, of course, sometimes there was a bonus for going. They would offer sweets or money. Mom says, "If they ask you what it costs to either go shopping for them, you must always say, 'Nothing.' And if they insist, say, 'Whatever you mind to give me.'" This was the nature of being at that table. In fact, she indicated that if we would do that, not only would we have the joy of receiving the gratitude from the members of the extended family, but she said, "Even God will smile, and when God smiles, there is peace, and justice, and joy."
물론, 아주머니들을 방문하면 무언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단것들이나 돈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만일 그 분들이 장을 대신 봐주는 것에 대해 얼마를 주어야 하니라고 물으시면 반드시 항상 '그냥 해드리는 거예요'라고 말해라. 그런데 만일 계속 주시겠다고 하시면 '아무거나 괜찮습니다'라고 말해라." 이것이 우리 집 식탁에서 행해지던 모습이지요. 실제로,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시길 만일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하면 넓은 의미의 가족들로부터 고마워하는 마음을 받고서 우리의 마음이 기쁠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도 미소를 지으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면 평화와 정의와 기쁨이 있단다"라고 하셨습니다.
So, at the table at 915, I learned something about compassion. Of course, it was a minister's family, so we had to add God into it. And so, I came to think that mama eternal, mama eternal, is always wondering: Are all the children in? And if we had been faithful in caring and sharing, we had the sense that justice and peace would have a chance in the world.
그래서 915번지의 식탁에서 저는 컴패선에 대한 그 무엇을 배웠습니다. 물론 우리 집은 목사님 가정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원하신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하신 어머니는 늘 챙기셨습니다. "다 들 제자리에 있니?" 라고요. 만일 우리가 보살피고 나누는 데 충실했다면 정의와 평화가 이세상에서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Now, it was not always wonderful at that table. Let me explain a point at which we did not rise to the occasion. It was Christmas, and at our family, oh, what a morning. Christmas morning, where we open up our gifts, where we have special prayers, and where we get to the old upright piano and we would sing carols. It was a very intimate moment. In fact, you could come down to the tree to get your gifts and get ready to sing, and then get ready for breakfast without even taking a bath or getting dressed, except that daddy messed it up.
식탁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 대처하지 못했던 어떤 일에 대해서 얘기해드리겠습니다. 크리스마스 때였습니다. 우리 가족에겐 대단한 아침이죠. 크리스마스 아침엔 우리는 선물을 풀고 특별한 기도를 하며 오래된 직립형 피아노(뚜껑이 열리는 피아노)에 모여 캐롤을 부릅니다. 우리 가족만의 친밀한 시간이죠. 사실상, 선물을 가지러 크리스마스 트리 밑으로 가지요 그리고 노래를 부를 준비를하고 그리고 나서는 심지어 씻지도 않고 옷을 갈아 입지도 않은 채 아침 식사를 하게 됩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망쳐 놓으시지만 않으시다면요.
There was a member of his staff who did not have any place on that particular Christmas to celebrate. And daddy brought Elder Revels to the Christmas family celebration. We thought he must be out of his mind. This is our time. This is intimate time. This is when we can just be who we are, and now we have this stuffy brother with his shirt and tie on, while we are still in our PJs. Why would daddy bring Elder Revels? Any other time, but not to the Christmas celebration.
아버지의 직원 중에 한 분이 그 특별한 날인 크리스마스를 보낼만한 어떤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레벨 장로님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데리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뭘 잘못 생각하신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의 시간이고 가족간의 친밀한 시간이니까요. 지금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우리가 되는 시간인데 지금 이 꽉 막힌 형제분이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왜 아버지께서는 레벨 장로님을 데리고 오셨지? 다른 때은 괜찮지만 크리스마스 날은 아니잖아.
And mom overheard us and said, "Well, you know what? If you really understand the nature of this celebration, it is that this is a time where you extend the circle of love. That's what the celebration is all about. It's time to make space, to share the enjoyment of life in a beloved community." So, we sucked up. (Laughter)
그때 어머니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얘들아, 그거 아니? 만일 너희가 이 날의 본질을 정말로 이해한다면 지금이 바로 너희가 더 큰 사랑을 실현할 수 있을 때란다. 이것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의미란다. 사랑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만들어 삶의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이란다." 그래서 우리는 꾹 참았습니다. (웃음)
But growing up at 915, compassion was not a word to be debated; it was a sensibility to how we are together. We are sisters and brothers united together. And, like Chief Seattle said, "We did not spin the web of life. We're all strands in it. And whatever we do to the web, we do to ourselves." Now that's compassion.
915번지에서 자랄 때 컴패션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컴패션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정서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합된 자매요 형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시애틀 추장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삶의 거미줄을 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거기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가 거미줄에게 어떤일을 하던 그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하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컴패션입니다.
So, let me tell you, I kind of look at the world this way. I see pictures, and something says, "Now, that's compassion." A harvested field of grain, with some grain in the corners, reminding me of the Hebrew tradition that you may indeed harvest, but you must always leave some on the edges, just in case there's someone who has not had the share necessary for good nurture. Talk about a picture of compassion.
그래서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을 이런 시각으로 봅니다. 제가 어떤 장면을 보게 되면, "그래, 그것이 컴패션이야"라고 말하게 되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습니다. 가장자리에 얼마간의 곡식이 남겨져 있는 추수가 된 밭을 보면 히브리인들의 전통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추수하게 된다면 항상 밭의 가장자리에 얼마간의 곡식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컴패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I see -- always, it stirs my heart -- a picture of Dr. Martin Luther King, Jr. walking arm in arm with Andy Young and Rabbi Heschel and maybe Thich Nhat Hanh and some of the other saints assembled, walking across the bridge and going into Selma. Just a photograph. Arm in arm for struggle. Suffering together in a common hope that we can be brothers and sisters without the accidents of our birth or our ethnicity robbing us of a sense of unity of being.
항상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가 앤디 영, 랍비 헤셀 그리고 아마도 틱낫한과 거기에 모인 다른 위대한 인물들과 함께 서로 팔에 팔을 끼고 다리를 건너 셀마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입니다. 단지 한 장의 사진일 뿐 입니다. 투쟁을 위해 팔에 팔을 끼고서 말입니다. 우리는 형제요 자매가 될 수 있다는 공통된 소망 안에서 고통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출생이나 인종과 상관없이 우리의 일체감을 빼앗기지 않은 채 말입니다.
So, there's another picture. Here, this one. I really do like this picture. When Dr. Martin Luther King, Jr. was assassinated, that day, everybody in my community was upset. You heard about riots all across the land. Bobby Kennedy was scheduled to bring an inner city message in Indianapolis. This is the picture. They said, "It's going to be too volatile for you to go." He insisted, "I must go."
또 다른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장면이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가 암살당했을 때 그 날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전국에 걸친 폭동에 대해 들어 보셨을 겁니다. 로버트 케네디가 인디아나폴리스의 한 도시 빈민가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불안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야만 합니다."
So, sitting on a flatbed truck, the elders of the community are there, and Bobby stands up and says to the people, "I have bad news for you. Some of you may not have heard that Dr. King has been assassinated. I know that you are angry, and I know that you would almost wish to have the opportunity to enter now into activities of revenge. But," he said, "what I really want you to know is that I know how you feel. Because I had someone dear to me snatched away. I know how you feel." And he said, "I hope that you will have the strength to do what I did. I allowed my anger, my bitterness, my grief to simmer a while, and then I made up my mind that I was going to make a different world, and we can do that together." That's a picture. Compassion? I think I see it.
그래서 커다란 트럭 위에 차려진 연단 위에 그 지역의 유지들은 앉아 있었고 로버트 케네디는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킹박사께서 암살당하셨다는 것을 듣지 못하신 분들도 몇 분 계실 겁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이 분노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마터면 복수를 행동에 옮길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을 뻔 했다것을 압니다." 그는 말했습니다."제가 여러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은 제가 여러분들의 심정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심정을 압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가 가졌던 것과 같은 힘을 갖기를 원합니다. 저는 잠시 분노와 쓰라림과 슬픔이 끓어오르는 것을 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장면입니다. 컴패션? 저는 거기에서 컴패션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I saw it when the Dalai Lama came to the Riverside Church while I was a pastor, and he invited representatives of faith traditions from all around the world. He asked them to give a message, and they each read in their own language a central affirmation, and that was some version of the golden rule: "As you would that others would do unto you, do also unto them." Twelve in their ecclesiastical or cultural or tribal attire affirming one message. We are so connected that we must treat each other as if an action toward you is an action toward myself.
달라이 라마가 제가 목회하고 있던 리버사이드 교회에 방문했을 때 저는 컴패션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세계의 신앙의 전통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에게 메세지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고유 언어로 중심이 되는 사상을 읽었습니다. 그것은 황금률의 다른 변형이었는데 "너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는 것입니다. 12가지 종류의 그들만의, 성직자의 옷, 전통 문화의 옷, 부족의 옷을 입고서 하나의 메세지를 천명했습니다. 우리는 서로간에 매우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 나에게 하는 행동인것처럼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One more picture while I'm stinking and thinking about the Riverside Church: 9/11. Last night at Chagrin Fall, a newspaperman and a television guy said, "That evening, when a service was held at the Riverside Church, we carried it on our station in this city. It was," he said, "one of the most powerful moments of life together. We were all suffering. But you invited representatives of all of the traditions to come, and you invited them. 'Find out what it is in your tradition that tells us what to do when we have been humiliated, when we have been despised and rejected.' And they all spoke out of their own traditions, a word about the healing power of solidarity, one with the other."
또 하나의 장면은 제가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9/11 사건. 고통스러웠던 가을의 밤, 신문과 방송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그 날밤, 리버사이드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 도시(뉴욕)에서 우리의 방송국을 통해 예배를 보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여러 전통의 대표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전통속에서 우리가 모욕당하고 경멸당하고 거부당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들 고유의 전통에서 나온 말을 전했습니다. 서로가 일치 단결했을 때 나오는 치료의 힘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I developed a sense of compassion sort of as second nature, but I became a preacher. Now, as a preacher, I got a job. I got to preach the stuff, but I got to do it too. Or, as Father Divine in Harlem used to say to folks, "Some people preach the Gospel. I have to tangibilitate the Gospel." So, the real issue is: How do you tangibilitate compassion? How do you make it real?
이제 컴패션이 저의 일종의 제2의 천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사가되었습니다. 이제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컴패션을 행해야 합니다. 할렘의 파더 디바인 (M.J. Divine목사)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설교합니다. 저는 복음을 만지고 느끼는 것처럼 알 수있게 해야합니다. 그러면, 진짜 문제는 어떻게 컴패션을 만지고 느끼는 것처럼 알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My faith has constantly lifted up the ideal, and challenged me when I fell beneath it. In my tradition, there is a gift that we have made to other traditions -- to everybody around the world who knows the story of the "Good Samaritan." Many people think of it primarily in terms of charity, random acts of kindness. But for those who really study that text a little more thoroughly, you will discover that a question has been raised that leads to this parable.
나의 믿음은 항상 이러한 이상를 고취시켰고 그 이상에 못미치게 되면 나는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전통에는 다른 전통에게 준 선물이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주로 자선, 선한 행동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절을 좀 더 주의깊게 정말로 생각해 보면 이 비유와 관련된 어떤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The question was: "What is the greatest commandment?" And, according to Jesus, the word comes forth, "You must love yourself, you must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mind and soul,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그 질문이란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일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 하고 네 생명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And then the person asked, "Well, what do you mean, 'neighbor?'"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And he answered it by telling the story of the man who fell among thieves, and how religious authorities went the other way, and how their supporters in the congregation went the other way; but an unsuspecting, despised person came along, saw the man in need, provided oil and wine for his wounds, put him on his own transportation, and took him to the inn and asked the innkeeper, "Take care of him." And he said, "Here, this is the initial investment, but if needs continue, make sure that you provide them. And whatever else is needed, I will provide it and pay for it when I return."
예수님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야기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종교 지도자들이 강도를 만난 사람을 보고 반대쪽으로 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종교 모임의 추종자들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반대쪽으로 갔는 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경멸을 받던 한 사람이 와서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의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바르고 그 사람을 자기의 탈 것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여관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저 사람을 잘 돌봐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먼저 이 돈을 쓰십시오 그러나 만일 이사람이 도움이 더 필요하게 되면, 그를 꼭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이 필요하던간에, 제가 돌아와서 갚고 지불하겠습니다."
This always seemed to me to be a deepening of the sense of what it means to be a Good Samaritan. A Good Samaritan is not simply one whose heart is touched in an immediate act of care and charity, but one who provides a system of sustained care -- I like that, 'a system of sustained care ' -- in the inn, take care. I think maybe it's one time when the Bible talks about a healthcare system and a commitment to do whatever is necessary -- that all God's children would have their needs cared for, so that we could answer when mommy eternal asks, "In regards to health, are all the children in?" And we could say yes.
이 말씀은 항상 나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깊이 있게 해줍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란 단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즉석에서 치료와 자선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지속적인 치료의 체계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바로 그점이 좋습니다. 여관에서 지속적인 치료의 체계를 갖고 보살피는 것입니다. 건강의료 체계와 필요한 모든 것을 처리해주는 헌신에 대해 아마도 이때 한 번 성경이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필요가 보살핌 받아서 그래서 "건강에 관한 한, 모두 보살핌을 받고 있니?"라고 영원하신 어머니가 물었을 때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Oh, what a joy it has been to be a person seeking to tangibilitate compassion. I recall that my work as a pastor has always involved caring for their spiritual needs; being concerned for housing, for healthcare, for the prisoners, for the infirm, for children -- even the foster care children for whom no one can even keep a record where they started off, where they are going. To be a pastor is to care for these individual needs.
컴패션을 만지고 느끼는 것처럼 알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항상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보살피는 일에 관여해 왔으며 그들의 주택,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써왔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 약자들, 어린이들 아마도 아무도 그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한 기록조차 해놓지 않는 수양 아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목사라는 것은 이러한 개별적인 필요를 돌보는 것입니다.
But now, to be a Good Samaritan -- and I always say, and to be a good American -- for me, is not simply to congratulate myself for the individual acts of care. Compassion takes on a corporate dynamic. I believe that whatever we did around that table at Bloodworth Street must be done around tables and rituals of faith until we become that family, that family together that understands the nature of our unity. We are one people together.
그러나 지금, 제가 항상 말씀드렸듯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고 훌륭한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저에게는 단순히 나 자신의 개별적인 선한 행동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컴패션은 공동의 역학 관계라는 것입니다. 저는 블러드워스 스트리트의 식탁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것들이 신앙의 테이블과 예식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일체감의 본질을 이해하는 한 가족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백성입니다.
So, let me explain to you what I mean when I think about compassion, and why I think it is so important that right at this point in history. We would decide to establish this charter of compassion. The reason it's important is because this is a very special time in history. It is the time that, biblically, we would speak of as the day, or the year, of God's favor. This is a season of grace. Unusual things are beginning to happen. Please pardon me, as a black man, for celebrating that the election of Obama was an unusual sign of the fact that it is a year of favor. And yet, there is so much more that needs to be done. We need to bring health and food and education and respect for all God's citizens, all God's children, remembering mama eternal.
그래서 제가 컴패션을 생각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 그리고 왜 역사상 지금 이 시점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해서 우리가 이러한 컴패션의 헌장을 제정하기로 했는지해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이 역사상 아주 특별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적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날이며,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은총의 시기입니다.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의 흑인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하나님의 은혜의 해임을 나타내는 특별한 징표라는 것을 축하함을 이해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건강과 음식과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모든 하나님의 시민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영원하신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말이지요.
Now, let me close my comments by telling you that whenever I feel something very deeply, it usually takes the form of verse. And so I want to close with a little song. I close with this song -- it's a children's song -- because we are all children at the table of mama eternal. And if mama eternal has taught us correctly, this song will make sense, not only to those of us who are a part of this gathering, but to all who sign the charter for compassion. And this is why we do it.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리며 이제 저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이 오면 대개 그 감동은 노래 가사의 형태로 옵니다. 그래서 짧은 노래로 마치려고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 노래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어머니의 식탁에서는 모두 어린이니까요. 그리고 만일 영원한 나의 엄마가 우리를 바르게 가르쳤다면 이 노래는 이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컴패션의 헌장에 서명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컴패션을 행하는 이유입니다.
The song says, ♫ "I made heaven so happy today, ♫ ♫ Receiving God's love and giving it away ♫ ♫ When I looked up, heaven smiled at me ♫ ♫ Now, I'm so happy. Can't you see? ♫ ♫ I'm happy. Look at me. I'm happy. Can't you see? ♫ ♫ Sharing makes me happy, makes heaven happy too ♫ ♫ I'm happy. Look at me. I'm happy. Can't you see? ♫ ♫ Let me share my happy loving smile with you. ♫
노래는 이렇습니다. '나는 오늘 천국을 기쁘게 만들었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주었어요 내가 하늘을 바라보니 천국이 나에게 미소를 지었어요 나는 정말 기뻐요. 정말 그래요 나는 기뻐요. 저를 보세요. 나는 기뻐요. 정말 그래요. 나누니까 내가 기쁘고, 나누니까 천국도 기뻐요. 나는 기뻐요. 나를 보세요. 나는 기뻐요. 정말 그래요. 기쁜 사랑의 미소를 당신과 나누고 싶어요.
That's compassion. (Applause)
이것이 컴패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