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year, Germany is celebrating the 25th anniversary of the peaceful revolution in East Germany. In 1989, the Communist regime was moved away, the Berlin Wall came down, and one year later,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the GDR, in the East was unified with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in the West to found today's Germany. Among many other things, Germany inherited the archives of the East German secret police, known as the Stasi. Only two years after its dissolution, its documents were opened to the public, and historians such as me started to study these documents to learn more about how the GDR surveillance state functioned.
올해 독일에서는 동독의 평화혁명 25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 공산당 정부가 몰락했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그리고 그 이듬해, 동독의 독일 민주 공화국과 서독의 독일 연방 공화국이 통일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늘날의 독일이 만들어졌습니다. 구정권의 많은 유산중에 독일은 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의 보관문서를 상속받았습니다. 슈타지가 해산되고 겨우 2년뒤 그들의 비밀문서는 대중에 공개되었고 저같은 역사학자들과 이문서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민주 공화국이 어떻게 사찰을 했는지 알기위해서 말이죠. 혹시 '타인의삶' 이라는 영화를 보셨을지 모르겠어요.
Perhaps you have watched the movie "The Lives of Others." This movie made the Stasi known worldwide, and as we live in an age where words such as "surveillance" or "wiretapping" are on the front pages of newspapers, I would like to speak about how the Stasi really worked.
바로 슈타지를 세계에 알린 영화입니다. 지금 우리는 살고있는 이 세대는 '사찰' 또는 '감청'이라는 단어가 신문 일면에 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슈타지가 실제로 어떻게 일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t the beginning, let's have a short look at the history of the Stasi, because it's really important for understanding its self-conception. Its origins are located in Russia. In 1917, the Russian Communists founded the Emergency Commission for Combating Counter-Revolution and Sabotage, shortly Cheka. It was led by Felix Dzerzhinsky. The Cheka was an instrument of the Communists to establish their regime by terrorizing the population and executing their enemies. It evolved later into the well-known KGB. The Cheka was the idol of the Stasi officers. They called themselves Chekists, and even the emblem was very similar, as you can see here. In fact, the secret police of Russia was the creator and instructor of the Stasi. When the Red Army occupied East Germany in 1945, it immediately expanded there, and soon it started to train the German Communists to build up their own secret police. By the way, in this hall where we are now, the ruling party of the GDR was founded in 1946.
먼저 슈타지의 역사에 대해 잠깐 알아보죠. 왜냐하면 슈타지의 자아개념을 이해하는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슈타치의 근원지는 러시아 입니다. 1917, 러시아 공산당은 반혁명파괴행위대응 비상위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줄여서 체카(Cheka)라고 하죠. 펠릭스 줴르진스키가 이 단체를 지휘했습니다. 체카는 공산당의 도구로서 국민을 위협하고 숙적을 청산하며 그들의 정권을 다져 갔습니다. 훗날 악명높은 KGB로 바뀌게 되죠. 슈타지 요원들은 체카를 동경했습니다. 자신들을 체키스트(Cheka+ist)로 불렀고 엠블럼또한 매우 비슷합니다. 보시는것 처럼요. 사실, 러시아의 비밀경찰은 슈타지의 설립자이며 교관이었습니다. 1945년, 소련군이 동독을 차지했을때 체카는 즉시 동독으로 확장했고 곧 독일 공산당원을 훈련하여 자신만의 비밀경찰을 조직합니다. 참고로, 여러분들이 계신 이 강당은 1946년, 독일 민주 공화국의 여당이 조직된 곳입니다.
Five years later, the Stasi was established, and step by step, the dirty job of oppression was handed over to it. For instance, the central jail for political prisoners, which was established by the Russians, was taken over by the Stasi and used until the end of Communism. You see it here. At the beginning, every important step took place under the attendance of the Russians. But the Germans are known to be very effective, so the Stasi grew very quickly, and already in 1953, it had more employees than the Gestapo had, the secret police of Nazi Germany. The number doubled in each decade. In 1989, more than 90,000 employees worked for the Stasi. This meant that one employee was responsible for 180 inhabitants, which was really unique in the world.
5년뒤, 슈타지가 조직되었고 단계적으로 부정한 업무가 슈타지로 이관되었습니다. 예들들어, 정치범을 수용하는 중앙교도소는 러시아인들이 지었지만 슈타지에게 인계되어 공산주의가 없어질때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모든 중요한 일들이 러시아인들의 출석아래 진행됐지만 독일인들은 아주 효율적이었기에 슈타지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1953년에는 이미 게슈타포보다 많은 요원을 가지게 되죠. 독일 나찌당의 비밀경찰 말입니다. 슈타지는 매 십년마다 두배로 늘어 1989년에는 9만명이 넘는 직원이 슈타지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말은 즉, 한명의 직원이 180여명의 주민을 관리했던거죠.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일이죠.
At the top of this tremendous apparatus, there was one man, Erich Mielke. He ruled the Ministry of State Security for more than 30 years. He was a scrupulous functionary — in his past, he killed two policemen not far away from here — who in fact personalized the Stasi.
이 거대한 조직의 꼭대기에는 에리히 밀케라는 남자가 있었어요. 그는 국가 안전국을 30년이 넘도록 지배했죠. 그는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이곳에서 멀지않은곳에서 경찰 두명을 살해했어요. 그는 사실상 슈타지를 개인화 했습니다.
But what was so exceptional about the Stasi? Foremost, it was its enormous power, because it united different functions in one organization. First of all, the Stasi was an intelligence service. It used all the imaginable instruments for getting information secretly, such as informers, or tapping phones, as you can see it on the picture here. And it was not only active in East Germany, but all over the world. Secondly, the Stasi was a secret police. It could stop people on the street and arrest them in its own prisons. Thirdly, the Stasi worked as a kind of public prosecutor. It had the right to open preliminary investigations and to interrogate people officially. Last but not least, the Stasi had its own armed forces. More than 11,000 soldiers were serving in its so-called Guards Regiment. It was founded to crash down protests and uprisings. Due to this concentration of power, the Stasi was called a state in the state.
슈타지의 어떤점이 그렇게 뛰어났던 걸까요? 먼저, 슈타지는 엄청난 권력을 가졌습니다. 여러가지 권력을 한 단체에서 가지고 있었거든요. 첫번째로, 슈타지는 정보부서였습니다. 그들은 상상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해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했어요. 정보원이나 전화도청같은 방법으로요. 이 사진처럼 말이죠. 동독뿐 아니라 전세계를 사찰했습니다. 두번째로, 슈타지는 비밀 경찰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검문할수 있었고 구속할수 있는 자체감옥을 운영했습니다. 세번째로, 슈타지는 검찰의 역할도 가졌습니다. 사전조사와 공식심문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결코 무시하지 못할 슈타지는 자체 무장병력을 가졌습니다. 11만명 이상의 군인들이 근위대의 이름으로 복무했습니다. 반란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렇게 집중된 권력때문에 슈타지는 국가안의 국가라고 불렸지요.
But let's look in more and more detail at the tools of the Stasi. Please keep in mind that at that time the web and smartphones were not yet invented. Of course, the Stasi used all kinds of technical instruments to survey people. Telephones were wiretapped, including the phone of the German chancellor in the West, and often also the apartments. Every day, 90,000 letters were being opened by these machines. The Stasi also shadowed tens of thousands of people using specially trained agents and secret cameras to document every step one took. In this picture, you can see me as a young man just in front of this building where we are now, photographed by a Stasi agent. The Stasi even collected the smell of people. It stored samples of it in closed jars which were found after the peaceful revolution. For all these tasks, highly specialized departments were responsible. The one which was tapping phone calls was completely separated from the one which controlled the letters, for good reasons, because if one agent quit the Stasi, his knowledge was very small. Contrast that with Snowden, for example. But the vertical specialization was also important to prevent all kinds of empathy with the object of observation. The agent who shadowed me didn't know who I was or why I was surveyed. In fact, I smuggled forbidden books from West to East Germany.
다함께 슈타지의 도구에 대하여 조금더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당시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임을 기억해 주세요. 물론 슈타지는 다양한 기술장비를 감시도구로 사용했죠. 전화는 도청되었구요, 서독의 수상의 전화통화도 마찬가지로 포함되었어요, 아파트또한 종종 도청되었습니다. 매일 9만개의 이 기계에 의해 편지는 개봉되었어요. 슈타지는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미행하였고 훈련받은 요원과 비밀카메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습니다. 제모습이 나온 사진입니다. 젊을때 제가 지금 이 건물앞에서 슈타지 요원에게 찍힌 사진입니다. 슈타지는 사람들의 체취까지 수집했습니다. 밀봉된 병에 보관되었죠. 이것들은 평화 혁명이후 발견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업무로인해 각 책임부서들은 고도로 전문화되었고 전화를 도청하는 부서는 편지를 관리하는 부서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요. 요원들이 슈타지를 그만둘때 개인의 지식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죠. 에드워드 스노든과는 반대로요. (전NSA요원, 기밀문서를 공개) 하지만 이 수직 전문화 역시 그들에겐 중요했어요. 감시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죠. 저를 감시했던 요원은 제가 누군지 그리고 왜 감시를 당하는지 알지 못했어요. 사실, 저는 금지도서를 서독에서 밀수했었습디다.
But what was even more typical for the Stasi was the use of human intelligence, people who reported secretly to the Stasi. For the Minister of State Security, these so-called unofficial employees were the most important tools. From 1975 on, nearly 200,000 people collaborated constantly with the Stasi, more than one percent of the population. And in a way, the minister was right, because technical instruments can only register what people are doing, but agents and spies can also report what people are planning to do and what they are thinking. Therefore, the Stasi recruited so many informants. The system of how to get them and how to educate them, as it was called, was very sophisticated. The Stasi had its own university, not far away from here, where the methods were explored and taught to the officers. This guideline gave a detailed description of every step you have to take if you want to convince human beings to betray their fellow citizens. Sometimes it's said that informants were pressured to becoming one, but that's mostly not true, because a forced informant is a bad informant. Only someone who wants to give you the information you need is an effective whistleblower. The main reasons why people cooperated with the Stasi were political conviction and material benefits. The officers also tried to create a personal bond between themselves and the informant, and to be honest, the example of the Stasi shows that it's not so difficult to win someone in order to betray others. Even some of the top dissidents in East Germany collaborated with the Stasi, as for instance Ibrahim Böhme. In 1989, he was the leader of the peaceful revolution and he nearly became the first freely elected Prime Minister of the GDR until it came out that he was an informant.
하지만 더욱 일반적인 슈타지의 방식은 정보요원을 이용하는것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비밀리에 슈타지에게 보고했습니다. 국가안전부 장관에게 비공식 직원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1975년부터, 약 2십만명이 슈타지와 지속적으로 협력헀고 이는 인구의 1퍼센트 이상입니다. 어떤면에서 국가안전부 장관은 옳았어요. 왜나하면 기술장비들은 사람들이 하는일만 기록할수 있지만 요원들과 스파이들은 사람들의 계획까지 보고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무슨생각을 하는지요. 그래서 슈타지는 아주 많은 정보원을 고용했습니다. 그 정보원을 구하고 교육시키는 시스템은 매우 정교했습니다. 슈타지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곳에 자체 대학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여러방법들이 연구되었고 요원들에게 교육되었습니다. 이 안내책자에는 사람을 설득해 그들의 이웃을 배신하게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때로는 강압에 의해 정보원이 되기도 한다고 알려집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건 사실이 아니죠. 왜냐하면 강요된 정보원은 믿을수 없는 정보원이니까요. 당신이 필요한 정보를 주기 원하는 사람만이 효과적인 내부고발자 입니다. 사람들이 슈타지와 협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인 확신과 물질적 이득 때문이었습니다. 요원들은 자신과 정보원사이에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사례가 보여주듯이 누군가를 설득해 다른사람을 배신하게 만드는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동독의 유력 반체체 인사들 조차 슈타지와 협력했습니다. 이브라힘 뵈메 같은 사람 말이죠. 1989년 그는 평화혁명의 지도자 였으며 독일 민주 공화국의 첫 자유선거로 거의 총리가 될뻔했으나 정보원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며 물러났습니다.
The net of spies was really broad. In nearly every institution, even in the churches or in West Germany, there were many of them. I remember telling a leading Stasi officer, "If you had sent an informant to me, I would surely have recognized him." His answer was, "We didn't send anyone. We took those who were around you." And in fact, two of my best friends reported about me to the Stasi. Not only in my case, informers were very close. For example, Vera Lengsfeld, another leading dissident, in her case it was her husband who spied on her. A famous writer was betrayed by his brother. This reminds me of the novel "1984" by George Orwell, where the only apparently trustable person was an informer.
스파이들은 정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어요. 거의 대부분의 단체에 있었고 교회내부와 서독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았습니다. 한 슈타지 고위 요원에게 이런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당신이 내게 정보원을 보냈다면," "내가 분명히 알아챘을 것이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보내지 않았어."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을 골랐지." 알고보니 제 절친 두명이 슈타지에 제 일상을 보고했더군요. 제 경우뿐 아니라 정보원들은 아주 가까이 있었어요. 일례로 반체제 지도자였던 베라 렝스펠트의 경우,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감시했습니다. 한 유명한 작가는 형제에게 배신을 당했구요. 이것들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상기시켜 줍니다. 소설 1984에서는 정보원만이 유일하게 신뢰할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But why did the Stasi collect all this information in its archives? The main purpose was to control the society. In nearly every speech, the Stasi minister gave the order to find out who is who, which meant who thinks what. He didn't want to wait until somebody tried to act against the regime. He wanted to know in advance what people were thinking and planning. The East Germans knew, of course, that they were surrounded by informers, in a totalitarian regime that created mistrust and a state of widespread fear, the most important tools to oppress people in any dictatorship.
하지만 슈타지는 이많은 정보를 수집해 보관해 왔을까요? 주목적은 사회통제였습니다. 거의 매연설마다 슈타지 장관은 누가 누구인지, 다시말하면 누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라고 명령했죠. 그는 누군가 반정부 활동을 하기까지 기다리는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하는지 미리 알기 원했죠. 동독인들은 물론 알고있었어요. 그들이 정보원에 포위당해있는것을요. 불신을 만들고 공포가 확산된 전체주의 체제에서 말이죠. 독제정권에서 사람을 억압할때 가장 중요한 도구죠.
That's why not many East Germans tried to fight against the Communist regime. If yes, the Stasi often used a method which was really diabolic. It was called Zersetzung, and it's described in another guideline. The word is difficult to translate because it means originally "biodegradation." But actually, it's a quite accurate description. The goal was to destroy secretly the self-confidence of people, for example by damaging their reputation, by organizing failures in their work, and by destroying their personal relationships. Considering this, East Germany was a very modern dictatorship. The Stasi didn't try to arrest every dissident. It preferred to paralyze them, and it could do so because it had access to so much personal information and to so many institutions. Detaining someone was used only as a last resort. For this, the Stasi owned 17 remand prisons, one in every district. Here, the Stasi also developed quite modern methods of detention. Normally, the interrogation officer didn't torture the prisoner. Instead, he used a sophisticated system of psychological pressure in which strict isolation was central. Nearly no prisoner resisted without giving a testimony. If you have the occasion, do visit the former Stasi prison in Berlin and attend a guided tour with a former political prisoner who will explain to you how this worked.
그렇게 때문에 많은 동독인들은 공산주의 정권과 싸우려하지 않았어요. 만약 싸우려 하면, 슈타지는 정말 악마같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Zersetzung' 이라는 방법입니다. 다른 안내책자에 설명되어 있죠. 이 단어는 번역하기 힘들어요. 왜냐면 이단어의 원래의 뜻은 '생물적 분해' 라는 뜻이거든요. 하지만 이것은 꽤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것의 목표는 비밀리에 사람들의 자신감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그들의 평판에 흠집을 내거나 직장에서 실패하도록 꾸미고 인간관계를 망쳐놓는 방법으로 말이죠. 이걸 생각하면 동독은 매우 근대적인 독재정권이었어요. 슈타지는 반정부인사를 체포하려 시도하지 않았고 그들을 마비시키는걸 선호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슈타지가 아주 많은 개인정보와 단체에 접근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금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슈타지는 총 17개의 구치소를 지역마다 하나씩 운영했습니다. 슈타지는 꽤 근대적인 구금방식을 개발했어요. 일반적으로, 심문관은 수감자를 고문하지 않았어요. 그대신, 매우 정교한 시스템을 사용해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죠. 철저한 고립을 기본으로한 시스템이었죠. 거의 모든 수감자가 저항하지 못하고 자백했죠. 만약 여러분도 기회가 된다면 베를린에 있는 전 슈타지 구치소를 방문해서 전 정치범의 가이드 투어를 참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이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줄겁니다.
One more question needs to be answered: If the Stasi were so well organized, why did the Communist regime collapse? First, in 1989, the leadership in East Germany was uncertain what to do against the growing protest of people. It was especially confused because in the mother country of socialism, the Soviet Union, a more liberal policy took place. In addition, the regime was dependent on the loans from the West. Therefore, no order to crash down the uprising was given to the Stasi. Secondly, in the Communist ideology, there's no place for criticism. Instead, the leadership stuck to the belief that socialism is a perfect system, and the Stasi had to confirm that, of course. The consequence was that despite all the information, the regime couldn't analyze its real problems, and therefore it couldn't solve them. In the end, the Stasi died because of the structures that it was charged with protecting.
답변되어야 하는 질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슈타지가 그렇게 잘 조직되었는데 왜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을까요? 첫째로, 1989년 동독의 지도자들은 늘어나는 시위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이 더욱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공산주의의 본고장인 소련에서, 오히려 더 개방적인 정책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동독정권은 서독의 융자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정부는 슈타지에게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공산주의의 이념은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지도층은 사회주의가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믿을수밖에 없었죠. 당연히 슈타지는 그것을 인정해야 했구요. 그 결과로 많은 정보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신의 실제적인 문제를 분석하지 못했죠.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슈타지는 자신들이 수호하던 체계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The ending of the Stasi was something tragic, because these officers were kept busy during the peaceful revolution with only one thing: to destroy the documents they had produced during decades. Fortunately, they had been stopped by human rights activists. That's why today we can use the files to get a better understanding of how a surveillance state functions.
슈타지의 결말은 조금 애처로왔습니다. 왜냐하면 요원들은, 평화혁명당시에 한가지 일을 하느라 매우 바쁘게 움직였거든요. 서류를 파괴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들이 수십년간 생산해낸 서류들을요. 다행히도, 인권활동가들에 의해 제지당했습니다. 그로인해 지금 우리가 이 자료를 활용해, 사찰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더 많이 이해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Applause)
(박수)
Bruno Giussani: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So Hubertus, I want to ask you a couple of questions because I have here Der Spiegel from last week. "Mein Nachbar NSA." My neighbor, the NSA. And you just told us about my neighbor, the spies and the informant from East Germany. So there is a direct link between these two stories or there isn't? What's your reaction as a historian when you see this?
Bruno Giussani: 대단히 감사합니다. 후버투스씨, 질문 몇가지 드릴게요. 여기 지난주 슈피겔 잡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Mein Nachbar NSA' '내 이웃, NSA'라는 제목이었죠. 그리고 당신은 지금 당신의 이웃, 동독의 스파이들과 정보원들에 대해 이야기 해줬습니다. 이 두가지 이야기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습니까? 역사학자로써 이 기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ubertus Knabe: I think there are several aspects to mention. At first, I think there's a difference of why you are collecting this data. Are you doing that for protecting your people against terrorist attacks, or are you doing that for oppressing your people? So that makes a fundamental difference. But on the other hand, also in a democracy, these instruments can be abused, and that is something where we really have to be aware to stop that, and that also the intelligence services are respecting the rules we have. The third point, probably, we really can be happy that we live in a democracy, because you can be sure that Russia and China are doing the same, but nobody speaks about that because nobody could do that.
Hubertus Knabe: 제생각엔 몇가지 말씀드릴것이 있어요. 첫째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목적에 차이점이 있구요. 테러리스트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집하는지 또는 국민을 억압하기 위해 수집하는지 의 차이 말이죠. 이것이 근본적이 차이를 만들죠. 하지만 반면에, 민주주의에서도, 이런 기구들은 악용될수 있구요. 그것은 우리는 이를 저지하기위해 꼭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정보부는 우리가 가진 규칙을 따라주어야 하겠지요. 세번째로는, 아마도,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산다는것에 행복할 수 있겠죠. 왜냐면 러시아나 중국은 똑같은 일을 하고있지만 누구도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아요. 왜냐면 그렇게 할수 없거든요.
(Applause)
(박수)
BG: When the story came out first, last July, last year, you filed a criminal complaint with a German tribunal. Why? HK: Yeah, I did so because of the second point I mentioned, that I think especially in a democracy, the rules are for everybody. They are made for everybody, so it's not allowed that any institution doesn't respect the rules. In the criminal code of Germany, it's written that it's not allowed to tap somebody without the permission of the judge. Fortunately, it's written in the criminal code of Germany, so if it's not respected, then I think an investigation is necessary, and it took a very long time that the public prosecutor of Germany started this, and he started it only in the case of Angela Merkel, and not in the case of all the other people living in Germany.
BG: 작년 7월, 이 이야기가 처음 알려졌을때 당신은 독일법정에 형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왜그랬습니까? HK: 그건 제가 언급한 두번째 요점 때문입니다. 제생각에 특별히 민주주의에서는 법은 모든사람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법은 만인을 위해 만들어 졌죠. 따라서 법위에 존재하는 기관은 허락되면 안됩니다. 독일의 형법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판사의 허가없는 도청은 허가되지 않는다고 말이죠. 다행이도, 독일 형사법에 쓰여져있어요. 그래서 제생각에 법을 위반했다면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의 검사가 이일에 착수하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죠. 하지만 메르켈 총리 사건만 시작 됐습니다. 독일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다루어야 하는데 말이죠.
BG: That doesn't surprise me because — (Applause) — because of the story you told. Seen from the outside, I live outside of Germany, and I expected the Germans to react much more strongly, immediately. And instead, the reaction really came only when Chancellor Merkel was revealed as being wiretapped. Why so?
BG: 그건 사실이 놀랍지 않군요. (박수) 왜냐하면 지금 하신 이야기 때문인데요. 독일에 살지않는 외부인으로 볼 때 저는 독일인들의 더욱 강하게 즉각적으로 반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제로 반발을 했던때는 메르켈 총리가 도청당한것이 밝혀졌을때 뿐이었어요. 왜그럴까요?
HK: I take it as a good sign, because people feel secure in this democracy. They aren't afraid that they will be arrested, and if you leave this hall after the conference, nobody has to be afraid that the secret police is standing out and is arresting you. So that's a good sign, I think. People are not really scared, as they could be. But of course, I think, the institutions are responsible to stop illegal actions in Germany or wherever they happen.
HK: 저는 이게 좋은 징후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고 체포될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죠. 강연이 끝난뒤 돌아가실때 비밀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려고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는사람은 없을거에요. 이건 좋은 징후죠.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럴수도 있는데 말이죠. 하지만 물론 정부기관들은 불법적인 행위를 멈출 책임이 있습니다. 독일뿐아니라 다른 여러국가도요.
BG: A personal question, and this is the last one. There has been a debate in Germany about granting asylum to Edward Snowden. Would you be in favor or against?
BG: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이구요. 독일에선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 허락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요. 찬성 하시나요? 반대하시나요?
HK: Oh, that's a difficult question, but if you ask me, and if I answer honestly, I would give him the asylum, because I think it was really brave what he did, and he destroyed his whole life and his family and everything. So I think, for these people, we should do something, and especially if you see the German history, where so many people had to escape and they asked for asylum in other countries and they didn't get it, so it would be a good sign to give him asylum.
HK: 어려운 질문이군요. 하지만 제게 물어보신다면, 솔직한 의견을 말씀드릴게요. 저는 망명이 허락하고 싶습니다. 그가한 행동은 정말로 용감했고 그로인해 그의 인생과 가족을 포함한 모든것이 망가졌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무언가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독일 역사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나라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거든요. 망명을 허락하는것이 좋은 신호가 될겁니다.
(Applause)
(박수)
BG: Hubertus, thank you very much.
BG: 내이브씨, 매우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