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man who's trying to live from his heart, and so just before I get going, I wanted to tell you as a South African that one of the men who has inspired me most passed away a few hours ago. Nelson Mandela has come to the end of his long walk to freedom. And so this talk is going to be for him.
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작하기에 앞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민의 한 사람을으로서 말씀드리건데 제가 가장 큰 영감을 주신 분 가운데 한 분이 몇 시간 전에 돌아가셨음을 알려드립니다. 넬슨 만델라가 자유를 향한 기나긴 여정을 끝마쳤습니다. 그래서 이 강연을 그분께 바칩니다.
I grew up in wonder. I grew up amongst those animals. I grew up in the wild eastern part of South Africa at a place called Londolozi Game Reserve. It's a place where my family has been in the safari business for four generations. Now for as long as I can remember, my job has been to take people out into nature, and so I think it's a lovely twist of fate today to have the opportunity to bring some of my experiences out in nature in to this gathering. Africa is a place where people still sit under starlit skies and around campfires and tell stories, and so what I have to share with you today is the simple medicine of a few campfire stories, stories about heroes of heart. Now my stories are not the stories that you'll hear on the news, and while it's true that Africa is a harsh place, I also know it to be a place where people, animals and ecosystems teach us about a more interconnected world.
저는 의구심에 가득찬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많은 동물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남아프리카의 동부지역에서 자랐는데 그곳은 론돌로치 동물 보호 구역이란 곳입니다. 그곳에서 저희 가족은 4세대에 걸쳐 사파리 사업을 운영해 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제 직업은 사람들을 자연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죠. 그래서 오늘 제가 여기 모인 여러분께 자연에 대한 제 경험을 소개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프리카는 지금도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은 모닥불 주변에서 흔히 오가는 간단한 이야기 같은 것들 입니다. 마음 속 영웅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죠. 제가 말씀드리는 이야기는 뉴스에 나올 법한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프리카가 살기 힘든 곳이긴 하지만 그곳은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생태계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When I was nine years old, President Mandela came to stay with my family. He had just been released from his 27 years of incarceration, and was in a period of readjustment to his sudden global icon status. Members of the African National Congress thought that in the bush he would have time to rest and recuperate away from the public eye, and it's true that lions tend to be a very good deterrent to press and paparazzi. (Laughter) But it was a defining time for me as a young boy. I would take him breakfast in bed, and then, in an old track suit and slippers, he would go for a walk around the garden. At night, I would sit with my family around the snowy, bunny-eared TV, and watch images of that same quiet man from the garden surrounded by hundreds and thousands of people as scenes from his release were broadcast nightly. He was bringing peace to a divided and violent South Africa, one man with an unbelievable sense of his humanity. Mandela said often that the gift of prison was the ability to go within and to think, to create in himself the things he most wanted for South Africa: peace, reconciliation, harmony. Through this act of immense open-heartedness, he was to become the embodiment of what in South Africa we call "ubuntu." Ubuntu: I am because of you. Or, people are not people without other people. It's not a new idea or value but it's one that I certainly think at these times is worth building on. In fact, it is said that in the collective consciousness of Africa, we get to experience the deepest parts of our own humanity through our interactions with others. Ubuntu is at play right now. You are holding a space for me to express the deepest truth of who I am. Without you, I'm just a guy talking to an empty room, and I spent a lot of time last week doing that, and it's not the same as this. (Laughter)
제가 아홉살 때, 만델라 대통령이 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러 오셨습니다. 그 때 그 분은 27년간의 투옥을 마치고 석방되신 직후였고 급작스레 전세계적인 우상이 되버린 자신에 적응하는 시기였지요. 아프리카 민족 회의의 회원들은 그 분이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적응 기간을 거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자는 기자와 파파라치들을 물리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웃음) 하지만 어린 소년으로서의 저 자신을 정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침대로 아침 식사를 가져다 드렸고 그때 낡은 운동복에 실내화 차림으로 그 분은 정원 주변을 산책하시곤 했죠. 밤에 저는 가족들과 함께 실내안테나가 달린 흰색 티브이 주변에 앉아 정원에서 나온 조용한 바로 그분이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석방되는 모습을 날마다 방송되는 것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 분은 분단되고 폭력적인 남아프리카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인간성을 가진 인물이었어요. 만델라는 종종 투옥으로부터 얻은 선물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생각하고 마음 속에서 그가 남아프리카를 위해서 원하던 것들을 창조해내는 능력이었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평화와 타협, 그리고 조화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커다랗게 열린 마음을 가진 행동을 통하여 그 분은 남아프리카 사람들이 "우분투"라고 말하는 것의 화신이 되었습니다. 우분투: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없이는 사람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각이나 가치가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계속 쌓아나가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아프리카의 집단적 인식 속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인간적 내면을 경험하게 된다고 언급되곤 합니다. 우분투는 지금 실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재 저 자신의 깊은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저는 그저 텅빈 공간에 대고 지껄이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죠. 지난 주에 저는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데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웃음)
If Mandela was the national and international embodiment, then the man who taught me the most about this value personally was this man, Solly Mhlongo. Solly was born under a tree 60 kilometers from where I grew up in Mozambique. He would never have a lot of money, but he was to be one of the richest men I would ever meet. Solly grew up tending to his father's cattle. Now, I can tell you, I don't know what it is about people who grow up looking after cattle, but it makes for über-resourcefulness. The first job that he ever got in the safari business was fixing the safari trucks. Where he had learned to do that out in the bush I have no idea, but he could do it. He then moved across into what we called the habitat team. These were the people on the reserve who were responsible for its well-being. He fixed roads, he mended wetlands, he did some anti-poaching. And then one day we were out together, and he came across the tracks of where a female leopard had walked. And it was an old track, but for fun he turned and he began to follow it, and I tell you, I could tell by the speed at which he moved on those pad marks that this man was a Ph.D.-level tracker. If you drove past Solly somewhere out on the reserve, you look up in your rearview mirror, you'd see he'd stopped the car 20, 50 meters down the road just in case you need help with something. The only accusation I ever heard leveled at him was when one of our clients said, "Solly, you are pathologically helpful." (Laughter)
만델라가 국가적인 또 국제적인 화신이었다면 제게 개인적으로 이런 가치를 가장 잘 알려주신 분은 바로 이 분입니다. 솔리 음롱고라는 분입니다. 솔리는 제가 모잠비크에서 자랐던 곳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어느 나무 아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분은 많은 돈을 가져 본 적이 없었지만 그 분은 제가 아는 한 가장 부유한 분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리는 부친의 소를 돌보며 자랐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소떼를 돌보며 자라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저는 알지 못한다는 점이긴 하지만, 많은 지략을 갖게 됩니다. 사라피 사업에서 그가 가졌던 첫 번째 직업은 사파리 트럭을 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숲 속 어디에서 그런 것을 배웠는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그 분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분은 우리가 흔히 서식지 팀이라고 하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팀은 보호 구역에서 동물들이 잘 지내는지를 책임지는 임무를 가지고 있죠. 그 분은 도로를 고치고 습지를 개량하거나 밀렵을 막는 일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는 함께 밖에 나갔습니다. 그는 암컷 표범이 걸어간 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오래된 길이었지만 재미삼아 길을 바꿔 표범을 따라갔습니다. 남긴 발자국을 따라 그 분이 움직이는 속도를 보면, 그 분은 거의 박사급의 추적자였어요. 보호 구역 어딘가에서 솔리를 추월해 지나가서 백미러을 올려다 보면, 20, 50미터도 지나지 않아서 혹시 도움이 필요한지 알아보려고 솔리가 차를 세울 겁니다. 그를 향해 제기되었던 유일한 불만은 우리 손님 중에 한 분이 "솔리, 당신은 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야." 라고 한 것이죠. (웃음)
When I started professionally guiding people out into this environment, Solly was my tracker. We worked together as a team. And the first guests we ever got were a philanthropy group from your East Coast, and they said to Solly, on the side, they said, "Before we even go out to see lions and leopards, we want to see where you live." So we took them up to his house, and this visit of the philanthropist to his house coincided with a time when Solly's wife, who was learning English, was going through a phase where she would open the door by saying, "Hello, I love you. Welcome, I love you." (Laughter) And there was something so beautifully African about it to me, this small house with a huge heart in it.
제가 직업적으로 사람들을 이런 환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을 때, 솔리는 제 팀의 일원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팀으로 일했어요. 우리가 함께 맞은 첫 고객은 미국 동부 해안의 자선 활동가 단체였는데 현장에서 그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자나 표범을 보러 나가기 전에 여러분들이 사는 곳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솔리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이 자선 활동가 단체가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는 우연히도 영어를 배우고 있던 솔리의 아내가 이런 문구를 배우고 있을 때였죠. 문을 열면서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환영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요. (웃음) 이 상황에는 매우 아름답고 아프리카다운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작은 집에는 엄청나게 따듯한 마음이 있습니다.
Now on the day that Solly saved my life, he was already my hero. It was a hot day, and we found ourselves down by the river. Because of the heat, I took my shoes off, and I rolled up my pants, and I walked into the water. Solly remained on the bank. The water was clear running over sand, and we turned and we began to make our way upstream. And a few meters ahead of us, there was a place where a tree had fallen out of the bank, and its branches were touching the water, and it was shadowy. And if had been a horror movie, people in the audience would have started saying, "Don't go in there. Don't go in there." (Laughter) And of course, the crocodile was in the shadows. Now the first thing that you notice when a crocodile hits you is the ferocity of the bite. Wham! It hits me by my right leg. It pulls me. It turns. I throw my hand up. I'm able to grab a branch. It's shaking me violently. It's a very strange sensation having another creature try and eat you, and there are few things that promote vegetarianism like that. (Laughter) Solly on the bank sees that I'm in trouble. He turns. He begins to make his way to me. The croc again continues to shake me. It goes to bite me a second time. I notice a slick of blood in the water around me that gets washed downstream. As it bites the second time, I kick. My foot goes down its throat. It spits me out. I pull myself up into the branches, and as I come out of the water, I look over my shoulder. My leg from the knee down is mangled beyond description. The bone is cracked. The meat is torn up. I make an instant decision that I'll never look at that again. As I come out of the water, Solly arrives at a deep section, a channel between us. He knows, he sees the state of my leg, he knows that between him and I there is a crocodile, and I can tell you this man doesn't slow down for one second. He comes straight into the channel. He wades in to above his waist. He gets to me. He grabs me. I'm still in a vulnerable position. He picks me and puts me on his shoulder. This is the other thing about Solly, he's freakishly strong. He turns. He walks me up the bank. He lays me down. He pulls his shirt off. He wraps it around my leg, picks me up a second time, walks me to a vehicle, and he's able to get me to medical attention. And I survive.
솔리가 제 목숨을 건졌던 날 그는 이미 저의 영웅이었어요. 아주 더운 날이었는데 우리는 강가에 있었지요. 너무 더워서 저는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물에 걸어들어 갔습니다. 솔리는 강둑에 남아있었지요. 강물은 모래위로 투명하게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방향을 바꿔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죠. 그런데 몇 미터 앞에 강가에서 쓰러진 나무가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뭇가지가 물에 닿아 있었는데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공포 영화였다면 관객들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거기 가지마. 그리 들어가면 안돼." (웃음) 당연히 악어가 그 그림자 뒤에 있었습니다. 악어가 사람을 공격할 때, 처음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은 바로 악어가 격렬하게 무는 것이죠. 쿵! 악어가 제 오른쪽 다리를 물었어요. 저를 끌어당기며 돕니다. 저는 손을 올려 가지를 잡을 수 있었죠. 그 놈은 저를 격렬하게 흔들었습니다. 다른 생명체가 나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은 아주 이상한 느낌입니다. 채식주의를 광고하는데 그보다 저 좋은 일은 없을거에요. (웃음) 강둑에 있던 솔리가 위험에 처한 저를 봤습니다. 그가 방향을 바꿔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죠. 악어는 다시 저를 뒤흔들기 시작했어요. 그 놈이 저를 또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제 주변이 피로 물들여진 것을 보았고 피는 물에 휩쓸려 내려갔어요. 그 놈이 두 번째로 저를 물었을 때, 저는 발길질을 했습니다. 제 발이 그 놈의 목으로 내려가자 저를 뱉어냈어요. 저는 나뭇가지를 잡고 위로 기어 올라갔고 물에서 빠져나와 어깨너머로 내려다 봤습니다. 무릎 아래로 제 다리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죠. 뼈는 부서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다시는 그걸 보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물에서 빠져나올 때 쯤, 솔리가 우리 사이로 물이 깊어지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죠. 제 다리 상태를 보았고 그와 저 사이에는 악어가 잇었습니다. 솔리는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곳으로 달려왔어요. 그는 가슴까지 물에 찬 채로 다가와서 저를 붙잡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 있었구요. 그는 저를 잡아 자신의 어깨 위로 저를 걸쳤습니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솔리는 엄청나게 힘이 세거든요. 그가 방향을 돌려 저를 강둑으로 데려갔습니다. 저를 눕히고 자기 윗옷을 벗어 제 다리를 감쌌어요. 그리고는 저를 다시 업고 차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제가 치료를 받게 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Now — (Applause)
음 - (박수)
Now I don't know how many people you know that go into a deep channel of water that they know has a crocodile in it to come and help you, but for Solly, it was as natural as breathing. And he is one amazing example of what I have experienced all over Africa. In a more collective society, we realize from the inside that our own well-being is deeply tied to the well-being of others. Danger is shared. Pain is shared. Joy is shared. Achievement is shared. Houses are shared. Food is shared. Ubuntu asks us to open our hearts and to share, and what Solly taught me that day is the essence of this value, his animated, empathetic action in every moment.
여러분 중에 악어가 숨어있는 깊은 물에 들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몇 사람이나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솔리에게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죠. 그는 제가 아프리카 전체에서 경험했던 놀라운 예 가운데 하나에요. 집단적 경향의 사회일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이 다른 이들의 행복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내부로부터 알게 됩니다. 위험도 고통도 공유합니다. 기쁨도 성공도 공유하지요. 집이나 음식도 공유합니다. 우분투는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공유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날 솔리가 제게 가르쳐 준 것은 이러한 가치의 정수였어요. 매 순간 활기차고 이해심 깊은 그의 행동도 포함해서 말이죠.
Now although the root word is about people, I thought that maybe ubuntu was only about people. And then I met this young lady. Her name was Elvis. In fact, Solly gave her the name Elvis because he said she walked like she was doing the Elvis the pelvis dance. She was born with very badly deformed back legs and pelvis. She arrived at our reserve from a reserve east of us on her migratory route. When I first saw her, I thought she would be dead in a matter of days. And yet, for the next five years she returned in the winter months. And we would be so excited to be out in the bush and to come across this unusual track. It looked like an inverted bracket, and we would drop whatever we were doing and we would follow, and then we would come around the corner, and there she would be with her herd. And that outpouring of emotion from people on our safari trucks as they saw her, it was this sense of kinship. And it reminded me that even people who grow up in cities feel a natural connection with the natural world and with animals. And yet still I remained amazed that she was surviving. And then one day we came across them at this small water hole. It was sort of a hollow in the ground. And I watched as the matriarch drank, and then she turned in that beautiful slow motion of elephants, looks like the arm in motion, and she began to make her way up the steep bank. The rest of the herd turned and began to follow. And I watched young Elvis begin to psych herself up for the hill. She got visibly -- ears came forward, she had a full go of it and halfway up, her legs gave way, and she fell backwards. She attempted it a second time, and again, halfway up, she fell backwards. And on the third attempt, an amazing thing happened. Halfway up the bank, a young teenage elephant came in behind her, and he propped his trunk underneath her, and he began to shovel her up the bank. And it occurred to me that the rest of the herd was in fact looking after this young elephant. The next day I watched again as the matriarch broke a branch and she would put it in her mouth, and then she would break a second one and drop it on the ground. And a consensus developed between all of us who were guiding people in that area that that herd was in fact moving slower to accommodate that elephant.
이제 근본이 되는 단어는 사람에 관한 것이지만 어쩌면 우분투는 단지 사람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저는 이 어린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엘비스에요. 사실 솔리가 지어준 이름인데요. 솔리는 그 녀석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춤추는 것처럼 걷는다고 그렇게 지어준 겁니다. 그 녀석은 골반과 뒷다리가 심하게 휜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그 녀석은 이동 중에, 우리가 있던 보호 구역의 동쪽에 있는 보호 구역에서 왔습니다. 제가 그 녀석을 처음으로 봤을 때 며칠 내로 죽을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동안 그 녀석은 겨울마다 되돌아 왔어요. 우리는 숲으로 나가 이런 특별한 녀석을 만나는 것에 흥분하곤 했죠. 그 녀석은 마치 뒤집어진 괄호처럼 생겼는데 우리가 하던 일을 제쳐놓고 그 녀석을 따라가곤 했어요. 그리고는 길모퉁이까지 가면 그 녀석은 같은 무리와 함께 있곤 했어요. 우리가 탄 사파리 트럭 사람들이 그녀석을 보면 애잔한 마음을 쏟아내곤 했는데 그건 이런 연대감 같은 것이었어요. 그건 제게 심지어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도 자연 세계나 동물과 자연스런 연대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제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녀석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그 무리와 이 작은 샘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지면에 있는 웅덩이 같은 것이었어요. 저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물 마시는 것을 봤는데 그 녀석이 이렇게 아름다운 코끼리의 느린 움직임을 보여주었어요. 마치 팔이 움직이는 것 같았죠. 그 녀석은 가파른 비탈을 올라가기 시작했고 무리의 나머지가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린 엘비스가 언덕을 따라 오르는 것을 봤습니다. 그 녀석은 눈에 띄었는데요. 귀를 앞으로 하고 열심히 걸어 반쯤 올라갔는데 그만 다리가 풀려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 녀석은 다시 시도했죠. 다시 한번 중간 쯤에서 뒤로 넘어졌습니다. 세 번째 시도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죠. 비탈을 반쯤 올랐을 때, 젊은 코끼리가 그 녀석의 뒤로 가서 그 녀석의 아래쪽으로 코를 밀어넣더니 비탈 위쪽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었어요. 제게 든 생각은 무리의 다른 코끼리들이 이 어린 꼬끼리를 사실상 돌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다시 무리의 우두머리가 나뭇가지를 꺽어 자신의 입에 넣는 것을 봤는데 우두머리는 두번째 가지를 꺽어 그걸 땅에 놓아 주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우리를 두 사이에는 일종의 합의가 일어났어요. 그 무리는 사실상 그 어린 코끼리를 데리고 다니려고 느리게 이동한다는 것이었죠.
What Elvis and the herd taught me caused me to expand my definition of ubuntu, and I believe that in the cathedral of the wild, we get to see the most beautiful parts of ourselves reflected back at us. And it is not only through other people that we get to experience our humanity but through all the creatures that live on this planet. If Africa has a gift to share, it's a gift of a more collective society. And while it's true that ubuntu is an African idea, what I see is the essence of that value being invented here.
엘비스와 그 무리가 제게 가르쳐 준 것은 우분투에 대한 제 정의를 넓혀주었습니다. 저는 야생의 왕국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본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인간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다른 이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통해서 입니다. 아프리카에 공유할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보다 집단적인 사회라는 점이에요. 우분투라는 것이 아프리카의 정신이기는 하지만 제가 본 것은 여기서 만들어지는 그런 가치의 정수입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Applause)
(박수)
Pat Mitchell: So Boyd, we know that you knew President Mandela from early childhood and that you heard the news as we all did today, and deeply distraught and know the tragic loss that it is to the world. But I just wondered if you wanted to share any additional thoughts, because we know that you heard that news just before coming in to do this session.
팻 미첼: 그러니까 보이드, 당신이 만델라 대통령과 아릴 때부터 아는 사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오늘 그 뉴스도 들으셨겠죠. 그건 정말 심란하고 세상에는 비극적인 손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공유하고 싶으신 다른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도 이 강연에 오기 직전에 그 뉴스를 들으셨다는 걸 알거든요.
Boyd Varty: Well thanks, Pat. I'm so happy because it was time for him to pass on. He was suffering. And so of course there's the mixed emotions. But I just think of so many occurrences like the time he went on the Oprah show and asked her what the show would be about. (Laughter) And she was like, "Well, it'll be about you." I mean, that's just incredible humility. (Laughter)
보이드 바르티: 감사합니다, 팻. 그 분이 짐을 넘겨줄 시간이 되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 분은 고통받고 있으셨거든요. 물론 감정이 교차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것은 그 분이 오프라 쇼에 나가셔서 그 쇼가 어떤 형식의 쇼인지 물으셨던 시기 등을 기억합니다. (웃음) 오프라가 "당신에 대한 쇼에요."라고 했죠. 그건 놀라울 정도의 겸손함이에요. (웃음)
He was the father of our nation and we've got a road to walk in South Africa. And everything, they used to call it Madiba magic. You know, he used to go to a rugby match and we would win. Anywhere he went, things went well. But I think that magic will be with us, and the important thing is that we carry what he stood for. And so that's what I'm going to try and do, and that's what people all over South Africa are trying to do.
그분은 우리나라의 국부였고 남아프리카가 나아갈 길을 주신거죠. 그 모든 것을 사람들은 마디바(만델라의 애칭)의 마술이라고 합니다. 그 분이 럭비 경기에 가실 때마다 우리가 승리하곤 했습니다. 그 분이 어디에 가시든 일이 잘 풀렸어요. 저는 그런 마술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분이 행했던 것을 우리가 이어갈 것이라는 점이죠. 그게 제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그렇게 할 겁니다. 그게 바로 남아프리카 전역의 모든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이겠지요.
PM: And that's what you've done today. BV: Oh, thank you.
팻 미첼: 그게 바로 당신이 오늘 하신 일입니다. 보이드 마르트: 아, 감사합니다.
PM: Thank you. BV: Thank you. Thanks very much.
팻 미첼: 감사합니다. 보이드 마르트: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Applause)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