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ear is 1249 CE. The French King Louis IX is sailing the Nile, threatening to overthrow the Egyptian sultan and capture Egypt.
서기 1249년. 프랑스의 왕, 루이 9세는 나일강을 항해하면서 이집트 술탄을 타도하고 이집트를 점령하고자 위협했습니다.
Egypt’s army commanders ask the sultan’s wife, Shajar Al-Durr, to report this news to the sultan, who has been injured in battle. But they don’t know the truth: the sultan is already dead, and Shajar Al-Durr is secretly ruling in his stead.
이집트 군 지휘관들은 술탄의 아내인 샤자르 알-두르에게 이 소식을 전투 중 부상 당한 술탄에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술탄은 이미 죽었고, 샤자르 알-두르가 비밀리에 대신 집권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Born around 1220 CE, Shajar Al-Durr, whose name means “tree of pearls,” was sold into slavery. This was a common fate for Christian children from Turkic countries like her. Enslaved boys, or mamaleek, were trained to be elite military personnel serving the Egyptian Sultanate, while enslaved girls were forced to become concubines. As a teenager, Shajar Al-Durr became a concubine to the son of the Egyptian sultan, As-Salih Ayyub. They had a son named Khalil who died in infancy, and As-Salih freed her so he could court her formally. As-Salih became sultan, and he and Shajar Al-Durr married.
서기 1220년경 진주 나무라는 뜻을 가진 샤자르 알-두르가 태어났고, 그녀는 노예로 팔려갔었습니다. 이것은 그녀와 같은 튀르크 출신의 기독교 어린이들의 운명이었습니다. 노예가 된 소년들, 즉 마말릭은 이집트 술탄국에 복무하는 정예 군인으로 훈련받았습니다. 소녀들이 첩이 되도록 강요 받는 동안 말이죠. 10대 때의 샤자르 알-두르는 이집트 술탄의 아들, 아스-살리 아이유브의 첩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겐 칼릴이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유아기 때 죽었고, 아스-살리는 그녀에게 정식으로 구애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습니다. 아스-살리는 술탄이 되었고, 샤자르 알-두르와 결혼했습니다.
When As-Salih died in the middle of the conflict with the crusaders, Shajar Al-Durr knew King Louis IX had already succeeded in conquering important Egyptian port cities. Fearing that her husband’s death would threaten the army’s morale, she decided to keep it a secret. To conceal his death, she had food brought to his tent, and forged his signature on decrees to govern the sultanate and advise military commanders.
십자군과의 갈등이 있을 당시에 아스-살리는 사망했고, 샤자르 알-두르는 이미 루이 9세가 이집트 항구 도시들을 점령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술탄의 죽음이 군대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녀는 이를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음식을 들고 텐트로 간 그녀는 문서에 그의 서명을 위조한 뒤 술탄국을 통치하고 군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을 얻었죠.
When the crusaders attacked the Egyptian city of Al-Mansurah, Egyptian soldiers ambushed the crusaders and took the French king hostage. Meanwhile, the truth about the sultan’s death began to leak. Shajar Al-Durr invited her late husband’s son with another woman to claim the title of sultan. At first, both she and her mamaleek advisers supported her stepson’s claim to the throne. But then he began threatening to exile her and kill the mamaleek, making wild accusations about them. The mamaleek had served Shajar Al-Durr’s husband before her, and seen her capable rule so far. They thought she would make a better ruler than the unpredictable prince, and conspired with her to assassinate him.
십자군이 이집트의 도시, 알-만수라를 공격했을 당시에, 이집트 군은 십자군을 기습하여 프랑스 왕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한편, 술탄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샤자르는 고인이 된 남편과 다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초대했습니다. 술탄의 칭호를 주장하기 위해서 말이죠. 처음에, 그녀와 그녀의 마말릭 고문들은 의붓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지지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녀를 추방하고 마말릭을 죽이겠다 위협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마말릭은 샤자르 알-두르보다 그의 남편을 더 오래 섬겨왔고, 지금까지 그녀의 통치 능력을 쭉 보았습니다. 고집불통 왕자보다는 그녀가 더 나은 통치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공모하여 왕자를 살해하게 되죠.
In May of 1250, with the support of the mamaleek military, Shajar Al-Durr was inaugurated as Sultana of Egypt. Days later, she negotiated the ransom of the French king and his army in exchange for an enormous sum of money and the surrender of the occupied port city. In spite of her success leading Egypt through this military crisis, she had to work to cement her credibility in the eyes of the public. As a formerly enslaved person, her rise to power wasn’t linked to royal ancestry, while as a woman, societal restrictions prevented her from participating in many of the events a sultan would typically attend. To increase her visibility and solidify her claim to the throne, she constructed a public mausoleum for her husband, issued the currency under her name, and signed decrees as Walidat Khalil, the mother of Khalil.
1250년 5월, 마말릭 군의 지원으로 샤자르 알-두르는 이집트의 술타나로 취임하게 됩니다. 며칠 후 그녀는 프랑스 왕과 그의 군대의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돈과 점령된 항구 도시의 항복을 대가로 말이죠. 군사적 위기에서 이집트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민들로부터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노예 신분이었었기에 그녀의 계승은 왕족 혈통과 연관이 없었고 여자로서 사회적 제한으로 인해 술탄의 수많은 행사들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왕위를 확고히 굳히고자 남편을 위해 왕릉을 설립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화폐를 발행하고, 칼릴의 어머니 왈리디드 칼릴의 이름으로 칙령에 서명했습니다.
Unfortunately, the sultanate’s premier religious authority, the caliph of Baghdad, still objected to having a woman rule. Under threat of revolt, Shajar Al-Durr married on the condition that her new husband must divorce his first wife. Shajar Al-Durr intended to maintain her status as supreme ruler. Her new husband threatened to undermine her rule by arranging a political marriage between himself and a princess from Mosul. So Shajar Al-Durr ordered his assassination. The news reached his first wife, who successfully plotted to murder the Sultana. Shajar Al-Durr’s killers threw her body from the Cairo citadel.
불행히도 술탄의 최고 종교 권리자인 바그다드의 칼리파는 여전히 여성이 통치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반란의 위험 속에서 샤자르 알-두르는 그녀의 새로운 남편이 반드시 그의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결혼했습니다. 샤자르 알-두르는 최고 통치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새 남편은 자신과 모술 출신의 공주가 정치적 결혼을 주선하여 그녀의 권위를 약화시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샤자르 알-두르는 그를 살해하죠. 이 소식은 그의 첫번째 아내에게도 전해졌고 그녀는 성공적으로 술타나를 살해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샤자르 알-두르의 암살자들은 그녀를 카이로 성채 밖으로 던졌습니다.
Shajar Al-Durr left no personal writings, but her legacy was lasting. Before her death, she built her own mausoleum with a madrasa, garden, public shower, and palace, decorated with her signature tree of pearls to remind Egyptians who made it.
샤자르 알-두르는 유서는 따로 남기지 않았지만 유산은 이어졌습니다. 죽기 전, 그녀는 자신의 묘에 마드라사(학교), 정원, 공중 목욕탕, 그리고 진주나무로 장식된 궁전을 함께 지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이뤄냈는지 이집트인들이 기억하도록 말이죠.